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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힘을 믿는 몽상가, 신동일 감독 신동일 감독의 주인공들은 시한폭탄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항상 결핍되어 있고, 해소되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세상은 위로는커녕, 해피엔딩의 희미한 가능성마저 일축시켜버린다. 이때 이들을 구원하는 건, 사람이고 관계다. 정치적 신념이나 피부색이 달라도,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주노동자와 10대 소녀의 기묘한 로맨틱 코미디 가 그걸 증명했다. 뒤늦게 데뷔해 이제 세 번째 문제작을 내놓은 신동일 감독. 조금은 낯선 그의 영화들을 보면서, 문득 신동일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는 고집스런 현실주의자일까, 아니면 유연한 몽상가일까? 를 본 관객들은 희망을 느꼈다. 이주노동자 카림은 부도덕한 고용주에게 1년치 월급을 떼먹힌 채 고국으로 추방됐지만, 그리하여 ‘.. 더보기
상상력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상상에 빠져 있다가 엄마 아빠한테 혼난 적이 있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거야. 너희들의 상상이 곧 우리들의 미래가 될 테니까.” 무한경쟁사회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준 어른이 있었다. 너무 일찍 자라버린 사람들에겐 잊고 있던 동심을, 아파트 숲에서 질식 상태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눈부신 대지를 선사한 할아버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접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달콤한 환각에 빠져봤을 것이다. 푸른 하늘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로 넘실거리는 형형색색의 바다, 벼가 무럭무럭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한가롭게 앉아있을 나 자신. 혹시 아나? 숲의 정령 토토로나 의.. 더보기
야구 읽어주는 남자 D-5.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2010 프로야구 개막을 5일 앞두고 있다. 총 47개의 시범경기에만 17만 명의 관중이 다녀갔다고 하니, 정규 시즌이 시작되면 그 열기가 어떨지 상상이 안 간다. 얼마 전, 나도 목동구장에 시범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진눈깨비가 사정없이 휘날리는 미친 날씨였다. 그런데도 구장 안은 회사에서 땡땡이 친 중년들과 시범경기 때부터 기록일지를 써내려가는 할아버지, 목이 터져라 육성응원을 하는 젊은이들 등 겨우내 야구에 굶주린 사람들로 빽빽했다. ‘토미 라소다’라는 메이저리그의 한 영감님이 이렇게 말했다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라고. 그의 말대로, 11월부터 2월까지는 야구팬들에게 암흑기다. 그 암울한 겨울잠의 시기가 지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 더보기
패리스 힐튼은 최악의 배우? 할리우드 제일의 셀러브리티 패리스 힐튼은 진지한 배우가 되길 원하지만,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녀는 언제쯤 영화다운 영화에서 역할다운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올해 골든 래즈베리 시상식은 온통 네온 핑크빛이었다. 골칫덩어리 공주님, 패리스 힐튼의 이야기다. 그녀는 최악의 여배우상과 최악의 커플상(하티 & 노티), 최악의 여우조연상(리포! 지네틱 오페라)을 휩쓸며 3관왕 자리에 올랐다. 이미 3년 전 로 최악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니, 초라한 필모그래피 치고 굉장한 성과(?)다. 힐튼의 굴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IMDB(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가 집계한 역대 최악의 영화 100편을 보면, 힐튼의 출연작은 무려 세 편(하티 & 노티, 플레지 디스!, 힐즈)이나 포함돼 있다. ‘배우’라는 타.. 더보기
<별이 전하는 말> 中 프롤로그 항상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해야 더 좋을지, 더 행복해지는 길일지 망설임 없이 결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지닌 영향력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선택이나 결정 앞에서는 겁이 난다.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어떤 색의 티셔츠를 살까, 친구랑 무엇을 하고 놀까. 이 정도는 가볍다. 이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나에겐 어떤 재능이 있는 걸까, 라는 질문들로 옮겨가면 슬슬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가 자신보다 더 강하고 똑똑한 누군가의 의견에 기대려 할 때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것은, 바로 ‘결정에 대한 두려움’이다. 굳이 대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사소해 보이지만 정작 개인에게 가장 중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