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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읽어주는 남자

D-5.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2010 프로야구 개막을 5일 앞두고 있다. 총 47개의 시범경기에만 17만 명의 관중이 다녀갔다고 하니, 정규 시즌이 시작되면 그 열기가 어떨지 상상이 안 간다. 얼마 전, 나도 목동구장에 시범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진눈깨비가 사정없이 휘날리는 미친 날씨였다. 그런데도 구장 안은 회사에서 땡땡이 친 중년들과 시범경기 때부터 기록일지를 써내려가는 할아버지, 목이 터져라 육성응원을 하는 젊은이들 등 겨우내 야구에 굶주린 사람들로 빽빽했다. ‘토미 라소다’라는 메이저리그의 한 영감님이 이렇게 말했다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라고. 그의 말대로, 11월부터 2월까지는 야구팬들에게 암흑기다. 그 암울한 겨울잠의 시기가 지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나이를 먹는 건 슬프지만, 야구가 시작되는 건 행복하다.

650만 관중. 올해 8개 구단이 목표로 한 관중수다. 게다가 올해는 월드컵이라는 복병까지 있어 필살기 마케팅이 동원되고 있지만, 단언컨대 이 열기는 절대 월드컵에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야구팬들의 충성도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야구에 대한 열기는 각종 야구 관련 프로그램 편성으로도 이어진다. 우선 케이블 채널에서 여자MC들을 내세워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KBS N 스포츠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김석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I♥Baseball>을 그대로 방영하고, MBC ESPN에서는 송지선․김민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야(野)>를 신설했다. SBS 스포츠에서 ‘홍드로’ 홍수아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프로그램으로 MBC의 <야구 읽어주는 남자>가 있다. 공중파 최초로 편성된 야구 토크쇼인데, 그동안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전부였던 상황에서 독보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야구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보다 야구장에 가서 직접 경기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로서는 그라운드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다. 모 선수의 하루 식사량은 어느 정도일까, A선수는 가수 B양과 정말 사귀고 있을까, 이택근과 윤진서 커플은 어떻게 속옷 광고를 찍게 되었을까, 선수들은 새로 바뀐 유니폼을 마음에 들어할까 등…. <야구 읽어주는 남자>는 야구팬들이 궁금해했던 소소한 정보들을 읽어준다. 이순철 해설가와 박동희 기자가 전문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패널이라면, <개그콘서트>의 ‘행복전도사’ 최효종은 LG 트윈스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말랑말랑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이 남자들 가운데서 탤런트 최아진은 ‘야구 들어주는 여자’ 역할을 하면서 이따금 소소한 질문들을 던진다. “연습하다 부러진 방망이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선수들은 도대체 데이트를 언제 하나요?” 골수팬들에게는 아마추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대다수 팬들이 알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야구 읽어주는 남자>는 지난 3월8일 방송을 시작하면서, 야구 프로그램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신호탄을 날렸다. 정규시즌 전인지라, 아무래도 초점은 전지훈련 스케치와 스토브리그 쪽으로 맞춰졌다. 야구 관련 뮤직비디오, 숫자로 보는 야구상식, 선수 말말말 등 아기자기한 코너들로 구성됐는데, <연예가중계>나 <VJ특공대>를 연상시키는 진행이 인상적이다. 자막을 넣는 센스도 제법이다. 딱딱하고 보수적이었던 스포츠 프로그램이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는 증거다. 문제는 정규시즌이 시작된 이후부터다. 무엇보다 8개 구단의 소식을 골고루 안배해서 소개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으며, 전문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야구 읽어주는 남자>의 진가는 야구의 봄이 시작된 이후에 판가름날 것이다. 참, 이 프로그램은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방영되니, 매주 월요일마다 잠을 설치며 기다리지 마시길. 고작 한 달에 한 번뿐이라니 아쉽기도 하지만, 이거라도 야구팬들로서는 감지덕지.

<MOVIEWEEK>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