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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cartman

브란젤리나 신드롬, 가십에서 판타지까지

네 가지 코드로 읽는 21세기 할리우드의 가장 요란한 커플

브란젤리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한데 일컫는 이름이다. 톰캣(톰 크루즈 + 케이티 홈즈), 보니스톤(빈스 본 + 제니퍼 애니스톤), 가플렉(벤 애플렉 + 제니퍼 가너), 애쉬미(애쉬튼 커처 + 데미 무어) 등 유사한 스타일의 단어들이 할리우드를 떠돌고 있지만, 브란젤리나의 막강한 파워 앞에서는 모두 아류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처음엔 브란젤리나도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녀 스타의 결합이라는 프리미엄에다가, 당당한 연인을 넘어 실천하는 박애주의자로서 세계를 누비는 안젤리나 졸리의 특별한 행보는 이 할리우드 스타 커플에게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현대적 귀족의 아우라를 둘러주었다. 게다가 브란젤리나는 지난 5월 '완벽한' 유전자 조합의 2세, 실로 누벨 졸리-피트를 낳고 연예 저널의 지면을 도배하면서 영국 왕실 뺨치는 세계적 로열 패밀리로 자리잡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스캔들을 뛰어넘은 스캔들,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쇼비즈니스계를 주무르는 신개념 귀족 브란젤리나. 할리우드는 왕정복고의 서막이라도 연 것일까? 올림푸스 신들의 로맨스처럼 뭇사람들의 환상을 사로잡은 브란젤리나 신드롬의 네 가지 특별한 코드를 살펴본다.

issue 1. 위풍당당한 '가해자'

스캔들 메이커의 지존, 엘리자베스 테일러 여사는 일찍이 삼각관계가 얼마나 드라마틱한 가십거리인가를 증명한 바 있다. 바로 친한 친구였던(그것도 갓 출산한 현모양처!)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 에디 피셔(캐리 피셔의 아버지)와 홀랑 바람이 나버린 사건이다. 얌전하고 순종적이었던 레이놀즈와 달리, 길들여지지 않은 테일러의 야성미에 에디 피셔는 푹 빠져버렸고, 짧은 기간이나마 두 사람은 맹렬한 비난 속에서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나 화살은 철부지 아이돌 스타 에디 피셔보다 테일러 쪽으로 쏟아졌다. 그녀는 매춘부로 비난받았고, 교황까지 나서서 그녀의 부도덕함을 나무랐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 일화는 브란젤리나 스캔들의 시발점과 상당히 유사한 지점에 있다. 그러니까 안젤리나 졸리 역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파렴치한 가정파괴범으로 몰렸던 것이다. 졸리가 베를린에서 <프렌즈> 티셔츠를 입은 애니스톤 팬의 습격을 받은 걸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물론 항간에서는 여전히 ‘애니스톤=착한 여자, 졸리=나쁜 여자’란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떠돌고 있다. 심지어 <US위클리>에서는 아직도 “애니스톤과 졸리, 누가 더 훌륭한 여배우인가?”란 한심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한다(졸리가 53%로 약간 우세).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삼각관계 스캔들에는 브래드 피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진한 제니퍼 애니스톤 역시 졸리의 ‘오컬트적인 매력’ 앞에서는 게임이 안 되는 듯 보인다. 즉, 브란젤리나 스캔들이 그토록 주목받았던 이유는 브래드 피트나 제니퍼 애니스톤 때문이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제니퍼, 드디어 입을 열다! 그리고 말하고 말하고 울고 또 말하고….”(2005년 9월 <W> 표지)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한 제니퍼의 노력!… 그녀는 브래드와 했던 데이트 코스를 빈스 본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2006년 7월 <인 터치>) 제니퍼 애니스톤 역시 미디어의 희생양이겠지만, 수많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너무 많이 한숨을 쉬었고, 매번 힘든 시기를 거쳤음을 강조했다. 이쯤 되면 동정표를 던지던 사람들도 슬슬 짜증이 날 만하다. 반면, 안젤리나 졸리는 단 한 번도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미안한 감정을 비추지 않았다(오히려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듯!). 대신 UN 친선대사의 입장에서 아프리카 난민들과 세계 평화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만 내놓았을 뿐이다. 게다가 난민구호기금으로 몇십만 달러씩 기부하는 화끈함마저 보였으니, 상대적으로 졸리가 커보이는 게 사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젤리나 졸리는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 난민 구호에 힘썼던 오드리 헵번과 스캔들 메이커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이에 교묘하게 걸쳐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아니, 뭐라 정의하기 힘든 이 여성을 사람들은 지금 ‘섹시한 마더 테레사’란 수식어로 부르고 있다. 그러니 미안하게도, 브란젤리나 스토리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은 조만간 잊혀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issue 2. 밀리언 달러 베이비

브란젤리나 2세 실로 누벨 졸리-피트. 이름(실로)에서부터 ‘평화로운 자’, ‘메시아’란 거창한 의미를 지닌 이 아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엄청난 몸값을 자랑했다. 결국 4백만 달러에 영국의 <헬로> 매거진과 미국의 <피플>지에 사진 독점 게재권이 돌아갔고, 완벽한 유전자 조합의 결과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해 불티나게 팔렸다. 여기서 잠깐. 4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40억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빌 게이츠가 지닌 재산의 0.008%에 제니퍼 애니스톤이 <프렌즈> 4회분 에피소드에 출연해야 벌 수 있는 돈이며, 개발도상국 2천6백명 어린이들을 1년 동안 먹이고 교육시키며 치료할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러니 실로가 1천7백만원짜리 다이아몬드 젖꼭지를 문다고 화들짝 놀랄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탄생하는 순간에 4백만 달러를 쾌척한 ‘명품 아기’가 아닌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브란젤리나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반응이다. 실로의 탄생과 함께, 사람들은 어느새 삼각관계 스캔들은 잊어버린 듯하다. 오히려 관심은 브란젤리나의 가족, 정확히 말해 실로 누벨 졸리-피트 쪽으로 쏠리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원하는 건 ‘브래드 피트나 안젤리나 졸리처럼 되고 싶다’가 아니다. 두 스타가 만나 형성된 ‘로얄 패밀리’에 영입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나를 입양해 주세요’란 노골적이 문구가 박힌 머그컵이 팔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들 역시 은연중에 ‘나도 실로 졸리-피트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죽하면 ‘브란젤리나 베이비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란 제목의 기사가 쓰여질 정도일까. 다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거진 ‘슬레이트닷컴’(slate.com)에 실린 칼럼 한 토막이다.

당신의 아이가 브란젤리나 베이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경우를 대비해, 참고로 하세요. (1) “왜 나는 브란젤리나의 아기가 될 수 없나요?” - 아이들은 3개월만 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예민해집니다. 브란젤리나 아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의 아이 역시 특별하다고 얘기해 주세요. 그래도 아이가 소외받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면, 아이의 사진으로 <OK!> 매거진 표지를 조작해 보여주세요. (2) “브란젤리나 아기는 나보다 더 훌륭한가요?” - 이 경우 직설적이고 정직하게 얘기해줘야 합니다. “그렇단다. 브란젤리나 아기는 너보다 더 훌륭하단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를 훨씬 더 사랑한단다”라고. (3) “나는 브란젤리나 아기와 친구가 될 수 있나요?” - “아니, 걔는 널 신경쓰지도 않는단다. 아마도 너는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거야”라고 답해주세요. 그리고 브란젤리나 아기의 사진은 특수렌즈로 찍혔고, 그 아이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는 눈이 멀어버릴 것이라고 얘기해 주세요.

태어남과 동시에 나미비아 시민권을 얻었고, 나미비아의 국경일 지정 얘기까지 나오게 한 실로 졸리-피트. ‘메시아’라는 의미 그대로 브란젤리나의 아기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 전세계(의 파파라치)가 가장 고대하던 아기였음에 틀림없다(‘셀러브리티닷컴’). 잘나가는 스타 톰 크루즈의 딸 ‘수리’마저 실로의 몸값 앞에 굴복하고 말았으니(‘WENN’), 하물며 우리같은 범인(凡人)들이야!

issue 3. 미디어와의 영리한 줄다리기

B(Brad): 하이, 달링. / A(Angelina): 하이, 허니. 굉장한 뉴스가 있어. <월드뉴스>(The News of the World)에서 내가 아이를 갖는다고 하더라. / B: 거참 이상하군. <US위클리>에서는 당신이 더 이상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 A: 하지만 <피플>지 최근호에서는 당신이 아버지가 된다고 했단 말야. / B: 아니, <내셔널 인콰이어러>에서는 내가 비밀리에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돌아갈 계획을 짜고 있다던데, 어떻게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어? / A: 글쎄, <더 선>에 따르면 내가 레즈비언이라는데 내가 당신이나 다른 남자에게서 아이를 갖고 싶어할 이유도 없겠지. / B: 망할 놈의 타블로이드! 손에 잡히는 건 뭐든지 쓰지 못해 안달이지. 걔들의 장점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말해봐. / A: 음… 한 가지 있다! <뉴욕 타임스>보다 보도가 정확하다는 것. - www.chortler.com에 실린 브란젤리나의 가상 전화통화

최근 호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니콜 키드먼은 대기 중인 파파라치들에게 맥주를 한 병씩 돌렸다. 기분 좋은 날이었던 만큼 파파라치들의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했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매일 파파라치들의 기습 공격에 시달렸던 브란젤리나라면, 더욱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이들이 실로의 출산을 위해 나미비아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2백여명의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니 브란젤리나가 얼마나 ‘돈이 되는’ 기사거리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파파라치에 대응하기 위해 나미비아는 정부 차원에서 ‘브란젤리나 특별보호구역’을 지정하고, 호텔과 병원의 경계를 강화했으며, 의심되는 기자들에게는 비자 발부를 거부했다. 물론 반대급부로 나미비아에서 브란젤리나가 훑고 지나간 구역은 엄청난 관광지가 됐지만, 이에 따른 비난도 만만치 않다. 평화로운 출산을 위해 나미비아 국경을 차단한 것을 두고 인권단체에서 “식민지 시대 군주”라고 비난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런데 딸의 최초 사진을 4백만 달러에 판 행동은 마냥 칭찬하기도, 비판하기도 힘든 지점이다. 파파라치들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차라리 깔끔하게 독점권을 주겠다는 게 공식적인 의도였다. 이에 대해 <인 터치> 최근호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은 “아프리카까지 가서 비밀리에 출산했으면서, 아이의 사진을 만천하에 공개한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문제는 수익금 전액을 유니세프에 기부했다는 데 있다. 번번이 수입의 1/3 정도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던 안젤리나 졸리다운 선택이었다. 2000년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 부부가 [OK!] 매거진에 결혼식 독점사진 게재권을 1백만 달러에 거래한 것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더글러스 부부는 “사생활을 공개해 이윤을 추구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브란젤리나는 ‘2천6백명의 어린이를 구했다’는 명분을 얻었다. 미디어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대처하는 브란젤리나의 맞대응은 그만큼 영리해지고 있는 것이다.

issue 4. 다인종 로열 패밀리의 탄생

대다수 할리우드 커플들이 그랬듯,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역시 언젠가는 등을 돌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두 사람의 불화설이 있었으며,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실로는 브래드 피트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란 기사를 썼다가 브란젤리나 팬들의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더 선>에서는 “불쌍한 브래드는 추락을 위한 비행을 하고 있다. 안젤리나가 세계를 떠돌면서 마더 테레사처럼 변해갈 동안, 한 남자는 그걸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불안한 미래를 꼬집었다.

그러나 이제 관심사는 섹시한 두 남녀의 화학작용이 아니라, 그들이 구축해놓은 다인종 패밀리가 어떻게 확산되고 유지될 것인가에 있다. 최근 안젤리나 졸리는 몇 년 전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이 공동으로 차린 영화사 ‘Plan B’의 야심 프로젝트 <마이티 하트 A Mighty Heart>의 새 여주인공이 되었다. 죽 쒀서 남 준 꼴이 된 제니퍼 애니스톤이야 펄펄 뛸 노릇이지만, 브란젤리나는 이번 기회로 연인, 가족을 넘어 사업 파트너로까지 착실하게 영역을 넓혀가게 됐다. 게다가 매독스, 자하라에 이어 또 다시 입양을 계획하고 있다니, 이들은 할리우드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영향력을 갖춘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그러니 “내가 고아원에 가면 모두들 긴장한다”던 안젤리나 졸리의 말이 농담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들의 왕성한 ‘번식력’을 두고 별의별 말들이 오가고 있다. <LA타임스>는 ‘브란젤리나의 입양 쇼핑’ 기사를 썼다가 독자들의 뭇매를 맞았고, 영국 연예 사이트 메가스타(www.megastar.co.uk)에서는 “190여개국을 돌면서 그들은 풀 세트를 갖출 모양”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심지어 허핑턴포스트닷컴(www.huffingtonpost.com)의 한 블로그에서는 “브란젤리나는 다음에 어느 곳에서 입양할까?”란 설문조사까지 실시하고 있다(현재까지의 결과는 1위 미시시피 빌록시, 2위 북한의 평양, 3위 페루의 리마로 집계됐다). 이렇게 비꼬든, 지지하든, 무관심하든간에 분명한 것은 브란젤리나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패밀리이자 워너비(Wanna Be) 현상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서로 만나기 전에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완전한 개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 2세를 낳고 가족의 형태를 갖추면서,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초에 할리우드는 수퍼스타를 낳았다. 그리고 할리우드는 로얄 패밀리를 창조했다.

<me>(Movie Express) 2006년 7월 No.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