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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cynicaly

부드러운 카리스마, <파스타>의 이선균

 

드라마의 신드롬은 시청률표의 숫자보다, 시청자들이 헌사한 신조어와 유행어의 수로 파악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최근 MBC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파스타>는 흥행의 싹수가 보인다. 서울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최고의 셰프 최현욱과 사고뭉치 막내 주방장 서유경의 달콤 쌉싸래한 로맨스를 따끈하게 요리하는 트렌디드라마 <파스타>. 몇몇의 유행어만 들어봐도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선균앓이’ ‘버럭 선균’ ‘얼음 선균’ ‘까칠 쉐프’ 등등. 부드러운 남자의 대명사 이선균의 변신이 <파스타>가 자신 있게 내놓는 메인 요리다.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죠. 언제나 ‘부드럽고 다정한 남자’ 역할만 맡아 온 건 아니지만, 유독 시청자와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에선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했어요.” ‘버럭’ 최현욱은 지금까지 시청자들이 익숙하게 봐 왔던 ‘부드러운 이선균’과 180도 다른 캐릭터. 일상에선 장난기도 있고, 감성적이고, 세심한 보통 남자지만, 주방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욕쟁이 쉐프’로 유명한 고든 램지 뺨치는 거친 폭군으로 돌변한다.     

“주방은 불과 칼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고, 음식 조리하는 소리로 가득차서 조용히 이야기하면 들리지 않아요. 맛있는 전쟁터죠. 그 곳을 다스리는 수장이라면 꽤 센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최현욱에게 떠오른 이미지는 농구 감독이었어요. 평소엔 정장을 입은 신사 같지만, 팀이 불리한 처우를 받으면 심판에게 격하게 어필하고, 게임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선수들을 거칠게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이미지가 큰 주방의 쉐프와 비슷하죠.” 이선균은 그에게서 <커피프린스 1호점>의 부드러운 왕자 최한성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대중에게 <파스타>의 최현욱이 너무 낯설고 거북할지 겁이 난다면서도, “배우라면 다양한 캐릭터에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죠. 변화의 기회가 와서 좋았어요. 욕을 먹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보기로 했어요. 처음엔 불편하고 덜컹거리겠지만, 이 길의 끝에는 분명 예전에 본 적 없는 풍경이 절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라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다.


예상하는 바대로, 이선균의 걱정은 ‘기우’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톡 쏘는 이선균’의 새로운 맛에 눈 뜬 팬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웃을 때 한껏 주름이 잡히는 사람 좋은 표정과  성량 풍부하고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에서 이선균의 매력을 발견했던 대중들은 상황에 따라 터프하거나, 코믹하거나, 순수한 소년의 표정을 내놓는 그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좀 난감했어요. 보통 대본을 보면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파스타>는 너무 다중적이었어요. 말투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처럼 극적이고, 가끔은 시트콤처럼 코믹한 톤이 필요하고, 주방에서는 전문직 드라마다운 무게감이 있어야 하니까요. 이제 중반으로 가면서 캐릭터가 몸에 딱 붙으면, 더 다중적인 현욱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이선균의 기대는 크다. 배우에게 대중이 달아놓는 ‘이미지’의 꼬리표는 양날의 칼이다. 대중은 자신의 입맛을 사로잡는 매력을 누구보다 빨리 발견하고 퍼뜨리고, 섣부른 변화를 원치 않는다. 동시에 배우가 같은 이미지에 안주하면 결국 ‘식상하다’는 이유로 냉정하게 떠나간다. 배우는 매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끊임없이 외줄을 타는 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선균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데뷔 이후 한동안 불러주는 모든 현장에 달려갔어요. 대사 한 마디만 있어도, 카메라 멀리 흐릿하게 얼굴이 잡혀도 감사하게 생각했죠. 지금의 위치가 인기가 ‘최고’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 때는 내가 CF를 찍게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처음 상상보다는 훨씬 인기배우가 된 거죠.”(웃음) 여러 영화에서 “저 인상적인 목소리의 단역 배우는 누구?”라는 궁금증만 남기고 총총히 사라지곤 했던 이선균을 화면 속에서 오래 볼 수 있게 만든 드라마는 이윤정 PD의 4부작 단막극 <태릉선수촌>이다. 이선균은 이 드라마를 “최초로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오는 작품이니 꼭 챙겨보라”고 자랑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드라마 현장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알게 된 작품이에요.” 반듯하거나 완전히 망가지거나, 연기를 특별히 할 게 없는 한정된 이미지의 단역을 전전할 때 <태릉선수촌>은 이선균에게 캐릭터를 선물했다. “신인 때는 누구나 힘들잖아요. 빨리 떠서 스타가 돼야겠다는 조바심은 전혀 없었지만, 항상 연기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어요. 아무도 내 연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몰라.” <태릉선수촌>의 이선균을 유심히 본 안판석 PD는 그를 <하얀거탑>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의 모든 정의와 정도(正道)의 조각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최도영은 이선균의 스펙트럼을 드러낸 작품이다.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 화려한 공격수라면, 최도영은 수비수 혹은 골키퍼에요. 그가 제대로 위치를 잡아야 전체 드라마가 균형감을 가질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심심한 듯 보이지만, 큰 산처럼 높고 깊은 인물이에요. 정말 좋아하고, 정말 힘들었던 캐릭터죠.”


그 뒤 다시 이윤정 감독과 손잡은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스타덤에 확고히 자리 잡은 이선균은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푹 빠져있다. <밤과 낮>으로 인연을 맺은 홍상수 감독은 이선균 안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캔버스를 발견한 모양이다. 언제나 배우의 내면에서 배우 스스로도 보지 못한 매력적인 ‘민낯’을 꺼내놓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계속 얼굴을 내비치더니 이번엔 주연 자리를 꿰찼다. “영화는 다 찍었는데, 여직 영화 제목도 안 정했답니다.(웃음) 꾸미지 않고, 가식 없이 가는 게 홍상수 감독님 스타일인데, 함께 작업해보니 기질이 서로 비슷한 것 같아요. <파스타> 촬영 중간에 한 달 동안 함께 찍었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현장보다 더 즐겁고 마음 편했어요. 빨리 극장에서 보고 싶어요.”


요즘 이선균은 “태어나서 가장 바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일본과 아시아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해외 팬들을 만나기 위해 해외 홍보일정도 다니고, 지난해 개봉한 <파주>처럼 이선균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에 도전하느라 바쁘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얻은 것이다. “아이를 보면서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저를 닮았다면 잘 모르겠지만, 아내(배우 전혜진)의 재능을 닮았다면, 분명히 훌륭한 배우가 될 것 같은데….” 예의 그 사람을 녹이는 부드러운 미소 속에 짧은 가족 자랑이 이어졌다. 행복한 요리사는 음식으로 행복을 전하고, 행복한 배우는 연기로 행복을 전염시키는 법이다. 그가 빚어낼 <파스타>가 전할 알싸하고 달콤한 행복의 맛이 기대된다.


아시아나항공 공식기내지 <ASIANA> 201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