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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cartman

연대의 힘을 믿는 몽상가, 신동일 감독


신동일 감독의 주인공들은 시한폭탄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항상 결핍되어 있고, 해소되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세상은 위로는커녕, 해피엔딩의 희미한 가능성마저 일축시켜버린다. 이때 이들을 구원하는 건, 사람이고 관계다. 정치적 신념이나 피부색이 달라도,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주노동자와 10대 소녀의 기묘한 로맨틱 코미디 <반두비>가 그걸 증명했다. 뒤늦게 데뷔해 이제 세 번째 문제작을 내놓은 신동일 감독. 조금은 낯선 그의 영화들을 보면서, 문득 신동일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는 고집스런 현실주의자일까, 아니면 유연한 몽상가일까?

<반두비>를 본 관객들은 희망을 느꼈다. 이주노동자 카림은 부도덕한 고용주에게 1년치 월급을 떼먹힌 채 고국으로 추방됐지만, 그리하여 ‘방글라데시 얼짱’ 카림과 민서의 로맨스도 불발에 그치고 말았지만,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도 세상을 바꿀 동력이 존재함을 느꼈다. 특히 제도권에 순응하지 않는 주인공 소녀 민서를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광장을 달구었던 ‘촛불소녀’들을 떠올렸다. <똥파리>처럼 강력한 감성라인은 없어도, <반두비>에는 확실히 관객들의 이성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무엇이 올바른지, 자꾸 판단하게 한다. 그래서 신동일 감독 스스로도 <반두비>를 “무정부주의적 로맨틱 코미디”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귀여운 유머가 있지만, 어딘가 씁쓸한 구석이 있는 로맨틱 코미디.
하지만 화제를 모은 것치곤, 결과는 영 썰렁하다. 애초에 신동일 감독의 지인들 중 몇몇은 “20만은 되겠다”고 예상했고, 그 스스로도 <똥파리>의 기록(12만6천)은 깨길 기대했다. 그게 과도한 욕심이라면, 최소한 <낮술>(2만6천) 정도는 들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두비>는 1만명도 채 못 넘긴 상황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 낯선 소재, 한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 극우파의 극렬한 안티 공세, 그리고 멀티플렉스에서 20분 간격으로 상영되는 블록버스터들의 역습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반두비>의 비상을 막았다. “그래도 제 전작들의 기록은 깼습니다. 이전 영화들이 워낙 처참했거든요. 하하. 아쉽긴 한데, 그래도 보신 분들은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감사하죠. 덕분에 여유를 갖고 있습니다.” 수치만 갖고 <반두비>의 패배를 선언하면 곤란하다. 이 영화는 앞으로 신동일 감독이 더 많은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현실과 영화는 분리될 수 없다


충무로 현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선, 재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고. 늦은 나이에 데뷔했으니, 신동일 감독이야말로 버티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1994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고 2005년에 장편 데뷔작 <방문자>를 발표했으니, 그간의 시간을 고려하면 꽤 우직한 행보다. 그 사이 함께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노선을 수정했지만, 신동일 감독은 한눈 한 번 팔지 않았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내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 하고 믿었을 뿐이다. 그는 “시네필의 감수성과 미련함”이 곧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이라고 말한다.
열정의 발로는 평범했다. <미션>이나 <아마데우스> 같은 영화들이 재밌어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영화 동아리에 가입했다. 영화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대를 이어 독문학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독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 덕분에, 고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헤르만 헤세를 읽던 신동일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 영화감독의 꿈을 지펴줄 결정적인 작품을 만났다. 폴란드 거장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인간>. “저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장소와 국적을 초월해서 폴란드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동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재미있더라고요.”
80년대 학번들의 고통스런 관문이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6월 항쟁, 4·13호언조치 등, 신동일 감독은 시대의 진통을 영화와 함께 겪었다. 영화와 현실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그냥 영화가 좋아서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나중에는 영화와 현실이 결합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그러다 보니 장르적 재미를 주는 영화보다는 사회의 모순이나 절규를 다루는 영화가 좋아지더라고요.” 문제의식으로 펄펄 끓는 영화들에 마음을 빼앗긴 신동일 감독은, 당연히 현실문제에 기반한 영화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뉴스 한 토막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고, 사회의 부조리를 곧 신동일식 코미디로 녹여냈다.


어색함 속에 발견되는 묘미


신동일 감독의 장편영화 세 편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는 자칭 타칭 ‘관계 3부작’으로 통한다. <방문자>가 관계가 맺어지는 영화였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관계가 깨지며, <반두비>에 이르러서는 다시 관계가 형성되면서 ‘정반합’의 과정을 보여준 셈이다. 물론 신동일 감독이 처음부터 ‘관계 3부작’을 만들겠다고 작정했을 리는 만무하다. 어쩌다 보니 하는 영화마다 전부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이야기가 들어갔을 뿐이다. ‘관계 3부작’은 ‘우정 3부작’ ‘연대 3부작’ ‘대한민국 3부작’으로 표현을 달리 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동일 감독은 “앞으로 관계 4부작, 관계 5부작이 계속 나올 거란 생각이 든다”면서 “what은 어느 정도 해결됐으니 이젠 how를 고민할 차례”라고 했다.
how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덧붙이자면, 사실 신동일 감독의 영화는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다. 가끔씩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숨은 서브텍스트도 많다. 스피디하게 컷이 전환되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심취해 있다면, 그의 영화가 지루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신동일 감독은 “어색함이야말로 다른 영화와 내 영화의 차이”라며, 살짝 힌트를 준다. “영화 은어로 ‘마가 길다’고 하잖아요. 그 어색한 순간을 못 견디는 분들은 굉장히 지루하고 못 만든 영화처럼 보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어색한 순간에 좀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면, 거기서 나름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아키 카우리스마키 식의 ‘무표정한 유머’를 선호한다고 덧붙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과 사고를 유도하면서도, 한편으로 신동일의 영화는 상당한 직설화법을 구사한다. 청년실업이나 경제난, 입시문제,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만 등, 취객들 사이에서 오갈 법한 정부비판적인 발언이 거침없이 영화 속에 나타난다. 이것이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한켠에선 직설화법 때문에 영화가 너무 투박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영화만 보면 신동일 감독이 고집스런 싸움닭처럼 인식되기도 하는데, 그는 굳이 직설화법을 밀고 나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직설화법이 제 화법의 특징 중 하나이긴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까지 그걸 고집하고 싶진 않아요. 지금까진 하도 시대가 하수상하여 그랬는데, 이제는 좀 더 작품 자체에 내밀하게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로운 싸움닭이 되지 말자


문제는 <반두비> 이후다. 다음 작품을 하기 위해선 여전히 자본의 문제가 걸려 있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현재 독립영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생계 문제도 또 하나의 과제다. 거기가 충주에 떨어져 살고 있는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도 앞선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신동일 감독은 세속적 욕망으로 들끓는 야심가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언젠가는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영화가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몽상가’에 가깝다. 혹은 현실과 영화에 한 발짝씩 딛고 촉수를 바짝 세우는 ‘혁명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동일 감독은 영화를 통해 “외로운 싸움닭이 되지 말고, 공유하고 연대하자”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어린 딸이 자라 기성세대가 될 무렵, 지금 세대보다 더 현명하게 싸우는 법을 터득하길 원한다. 그 길이 비록 고달프겠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시밭길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품고서, 그는 언젠가 찾아올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영화로 ‘연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발걸음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신동일 같은 영화감독이 있어서 다행이다.

<BRUT> 200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