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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애백치의 연애학개론 - 가난한 사랑의 노래 <룸바> 최근 한 시사주간지의 특집 기사 제목에 눈이 확 꽂혔다. “88만원 세대의 슬픈 사랑” 먹고 살기가 먹고 죽기만큼이나 힘든 세상이 피 끓는 청춘들의 사랑마저 갉아먹는가보다. 잡지를 사서 기사를 읽기 전까진 이런 마음이었다. 글은 신경림 시인의 ‘슬픈 사랑의 노래’로 포문을 열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중략 / 돌아서던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이 얼마나 질기고 흉폭한 놈인지 쥐 털만큼도 모르는 나이에도, 저 독백을 씹어 삼켰을 화자의 뒷모습이 떠올라 국어교과서를 읽다가 울게 만들었던 시다. 연애엔 돈이 든다. 주머니가 가난하면 연애도 힘들다. 요즘엔 승천하는 물가 탓에 몸을 조금만 움찔해도 1만 원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궁핍한 주머니 상황.. 더보기
브란젤리나 신드롬, 가십에서 판타지까지 네 가지 코드로 읽는 21세기 할리우드의 가장 요란한 커플 브란젤리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한데 일컫는 이름이다. 톰캣(톰 크루즈 + 케이티 홈즈), 보니스톤(빈스 본 + 제니퍼 애니스톤), 가플렉(벤 애플렉 + 제니퍼 가너), 애쉬미(애쉬튼 커처 + 데미 무어) 등 유사한 스타일의 단어들이 할리우드를 떠돌고 있지만, 브란젤리나의 막강한 파워 앞에서는 모두 아류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처음엔 브란젤리나도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녀 스타의 결합이라는 프리미엄에다가, 당당한 연인을 넘어 실천하는 박애주의자로서 세계를 누비는 안젤리나 졸리의 특별한 행보는 이 할리우드 스타 커플에게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현대적 귀족의 아우라를 둘러주었다. 게다가.. 더보기
상상력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상상에 빠져 있다가 엄마 아빠한테 혼난 적이 있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거야. 너희들의 상상이 곧 우리들의 미래가 될 테니까.” 무한경쟁사회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준 어른이 있었다. 너무 일찍 자라버린 사람들에겐 잊고 있던 동심을, 아파트 숲에서 질식 상태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눈부신 대지를 선사한 할아버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접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달콤한 환각에 빠져봤을 것이다. 푸른 하늘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로 넘실거리는 형형색색의 바다, 벼가 무럭무럭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한가롭게 앉아있을 나 자신. 혹시 아나? 숲의 정령 토토로나 의.. 더보기
야구 읽어주는 남자 D-5.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2010 프로야구 개막을 5일 앞두고 있다. 총 47개의 시범경기에만 17만 명의 관중이 다녀갔다고 하니, 정규 시즌이 시작되면 그 열기가 어떨지 상상이 안 간다. 얼마 전, 나도 목동구장에 시범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진눈깨비가 사정없이 휘날리는 미친 날씨였다. 그런데도 구장 안은 회사에서 땡땡이 친 중년들과 시범경기 때부터 기록일지를 써내려가는 할아버지, 목이 터져라 육성응원을 하는 젊은이들 등 겨우내 야구에 굶주린 사람들로 빽빽했다. ‘토미 라소다’라는 메이저리그의 한 영감님이 이렇게 말했다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라고. 그의 말대로, 11월부터 2월까지는 야구팬들에게 암흑기다. 그 암울한 겨울잠의 시기가 지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 더보기
패리스 힐튼은 최악의 배우? 할리우드 제일의 셀러브리티 패리스 힐튼은 진지한 배우가 되길 원하지만,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녀는 언제쯤 영화다운 영화에서 역할다운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올해 골든 래즈베리 시상식은 온통 네온 핑크빛이었다. 골칫덩어리 공주님, 패리스 힐튼의 이야기다. 그녀는 최악의 여배우상과 최악의 커플상(하티 & 노티), 최악의 여우조연상(리포! 지네틱 오페라)을 휩쓸며 3관왕 자리에 올랐다. 이미 3년 전 로 최악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니, 초라한 필모그래피 치고 굉장한 성과(?)다. 힐튼의 굴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IMDB(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가 집계한 역대 최악의 영화 100편을 보면, 힐튼의 출연작은 무려 세 편(하티 & 노티, 플레지 디스!, 힐즈)이나 포함돼 있다. ‘배우’라는 타.. 더보기
故 천지호 언니를 추모하며 사랑했던 천지호 언니, 언니가 이 지랄맞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다섯 밤이 지났수. 그 사이 대길이는 언니 무덤에 돌을 쌓아주고 제 갈 길을 떠났지만, 내게는 아직도 언니의 진한 발 냄새가 코언저리를 헤매고 있수다. 난 아직도 언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아요. 굳이 18회에서 죽어야 했는지 이유도 잘 모르겠고. 언니가 축지법 쓰는 황철웅을 피해 ‘천사인 볼트’처럼 도망쳤을 때, 그 살인귀가 언니한테 이렇게 말한 거 기억나우? “어느 골에서 허망하게 죽지 말고 꼭 살아 있거라”라고. 그런데 이게 뭐요. 차라리 조선 제일의 살인귀한테 멋지게 죽을 것이지, 근본도 모르는 포졸에게 화살 맞고 30분간 피 흘리다 허망하게 죽어버렸잖아요. 누구보다 생명력이 질길 것 같던 언니가 “발가락 긁어달라”는 지저분한 유언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