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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상상에 빠져 있다가 엄마 아빠한테 혼난 적이 있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거야. 너희들의 상상이 곧 우리들의 미래가 될 테니까.” 무한경쟁사회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준 어른이 있었다. 너무 일찍 자라버린 사람들에겐 잊고 있던 동심을, 아파트 숲에서 질식 상태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눈부신 대지를 선사한 할아버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접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달콤한 환각에 빠져봤을 것이다. 푸른 하늘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로 넘실거리는 형형색색의 바다, 벼가 무럭무럭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한가롭게 앉아있을 나 자신. 혹시 아나? 숲의 정령 토토로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이 슬쩍 다가와 당신 곁에 나란히 앉을지도.

미야자키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보는 순간 감탄하게 하는 생생한 비주얼에도 있지만, 보는 이에게도 상상력을 전이시킨다는 데 있다. 무거운 메시지가 저변에 깔려있음에도, 그의 영화에는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간과 여백이 있다. 때문에 미야자키 영화의 줄거리를 일일이 읊긴 힘들어도, 영화 속의 부드러운 미풍이나 파도의 빛깔을 환기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미야자키는 현실에서는 자연이 병들고 인간들의 아귀다툼으로 가득할지라도, 잠시나마 자신이 창조한 유토피아에서 시름을 잊으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한 편의 영화가 삶의 치유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미야자키는 상상력의 대가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그가 관객들을 군림하는 창조주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미야자키는 관객들의 마음을 떠보기 전에, 그 스스로가 이미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백발 성성한 피터팬의 세계에선, 하늘이 빨갛고 바다가 노랗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시점을 바꾸면 세상은 유연해진다

항상 자연이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면, 어린 시절 들판에서 뛰놀았을 그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형적인 도시 소년이었다. 도시에서 자란 성장기는, 오히려 그에게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자신에게 고유의 풍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40년대 일본은 태평양 전쟁의 상처로 얼룩졌던 곳. 미야자키는 폐허로 전락한 거리와 비참한 부랑자 신세가 된 또래 아이들을 보며, 전쟁에 대한 증오를 가슴 깊이 새겼다.

다행히, 소년에게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이겨내기 위한 탈출구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비상에의 동경. 비행기 제조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를 둔 덕분인지, 미야자키는 언젠가 하늘을 날고야 말겠다는 소망을 키웠다. 이런 상상은 훗날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의 아이들은 토토로의 가슴팍에 안겨 하늘을 날아다니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주인공들은 비행선을 타고 구름 너머 전설의 성을 드나들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가뿐하게 늪지대 위를 날아다닌다. 심지어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기계 문명이 발달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주인공 소녀가 빗자루 하나에 의지해 자유롭게 구름 사이를 헤엄친다.

“하늘을 날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실감할 수 있다. 항상 똑같은 시선으로 보면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칭칭 얽매여 있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시점을 바꾸면 세계는 좀 더 유연한 것이 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갖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 『TELEPAL』 1989년 7월 15일호,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중

1992년 1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 <붉은 돼지>가 발표됐을 때, “전쟁의 상처를 잘 살렸다”는 호평과 함께 많은 수상 소식들이 쏟아졌다. <붉은 돼지>는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포르코 롯소’가 전쟁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포르코 롯소는 미야자키가 중년이 된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한 캐릭터. 하지만 그가 가장 만족스러워했던 부분은, 무거운 메시지보다는 하늘을 나는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미야자키에게 비행은, 세상을 유연하게 바라보기 위한 장치나 마찬가지다. 그의 캐릭터들은 하늘을 날면서 속세의 상처를 잊고, 세상을 중재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한편, 미야자키는 벌레보다 더 작은 미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때 하잘 것 없던 곤충의 말소리가 들리고 초원의 잡초가 거목이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인간의 오만한 시선을 버렸을 때, 세상은 보다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미야자키가 늘 주장했던 ‘자연과 인간의 상생’은 인간이 겸허해졌을 때만 가능하다.


월트 디즈니를 뛰어넘은 장인

어린 시절, 미야자키는 결코 명랑한 아이가 아니었다. 4형제 중 가장 엉뚱했던 미야자키에게, 진정한 친구는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헨젤과 그레텔> 같은 유럽의 동화였다. 그만큼 그는 독서광이자 늘 상상의 세계에 빠져 있던 소년이었다. 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받을 때도, 미야자키는 극사실적인 데생보다는 상상력을 동원한 기괴한 그림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만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그의 아버지는 반대했고, 어쩔 수 없이 그는 가쿠슈인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만화영화를 만드는 건,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미야자키는 일본 관료사회에 영입되기에는 지나치게 자유롭거나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했다. 끝내 애니메이터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던 그는, 1963년 도에이 동화에 공채로 입사했다. “왜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습니까?”란 면접관의 질문에, 젊은 미야자키는 이렇게 말했다. “미 제국주의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초보 애니메이터의 이 당돌한 발언은 당시로선 비현실적으로 들렸을지 몰라도, 그의 선언은 정말 실현됐다. 특히 그가 1985년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 그의 활약은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사막에 부는 뜨거운 열풍’이란 뜻을 지닌 지브리는, 말 그대로 일본 만화영화 산업에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당시 맹목적인 가족주의에 얽매여 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백을 채웠다. 디즈니의 자연이 배경의 일부로 기능했을 때 미야자키는 자연을 표정이 살아있는 주인공으로 삼았고, 디즈니가 선과 악의 뚜렷한 대립구도를 보였을 때 미야자키는 나름 타당성이 있는 악당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브리의 창립작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부터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그의 작품에는 일관적인 장치가 등장한다. 대부분 성적으로 미성숙한 소녀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비롯해, 무국적의 시공간, 자연과 상생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어른들이 개입되지 않는 독립적인 어린이들의 세계 등. <모노노케 히메>처럼 살점이 뚝뚝 뜯겨져 나가는 자극적인 작품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미야자키는 상상력을 동원해 모순된 현실을 피해가려 했다. 무거운 현실을 판타지로 치유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모색하자는 것. 하지만 미야자키를 낭만적인 몽상가로만 보긴 어렵다. 그가 창조한 세계가 아름다울수록, 그 기저에는 이 철학자의 비판과 냉소가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동심의 뜰을 거니는 노인

<모노노케 히메>를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더 이상 그의 걸작을 보지 못한다는 소식에 팬들의 한숨이 짙어갈 무렵, 그는 4년 만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들고 나타났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 할 수 있다. 미야자키 월드의 익숙한 장치가 다시 반복됐음에도, 이 시적이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90세 할머니와 젊은 꽃미남 마법사가 연인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덧 세상을 관통한 노인은, 나이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이상향을 완성한 것이다.

‘포뇨 포뇨 포뇨~’란 주제가가 인상적이었던 <벼랑 위의 포뇨>에서, 미야자키는 아예 다섯 살짜리 소년으로 돌아가는 경지를 보여준다. <벼랑 위의 포뇨>는 <인어공주>를 미야자키 스타일로 전환시킨 작품. 여기서 어린 주인공 소년은 ‘포뇨’가 물고기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속세의 한계를 뛰어넘은 소년은, <인어공주>의 왕자보다 훨씬 용감하고 늠름하다. 그리고 소년의 성숙함은, 곧 미야자키의 성숙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야자키는 신화와 동화에 기반한 사전지식과 지독한 장인정신을 자랑하는 철학자인 반면, 절대 늙지 않는 피터팬인 것이다. 이전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대신, 어린아이처럼 들판을 뛰놀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지혜가 풍부해질수록 감성은 점점 어려지는 신기한 노인. 그가 창조해낼 상상력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CJ Magazine>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