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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ryucat

RF 카메라의 매력



RF 카메라를 부탁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애를 태우던 그녀가 때로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느끼는 매력은 쉽게 길들여져 권태로움을 주는 상대에 비교할 수 없다내 손에 길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길들이는 기계, 기본기에 충실한 RF가 바로 그런 카메라다. 

 

똑딱이카메라가 아닌 수동 기능을 갖춘 카메라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눈 돌리는 곳은 SLR 카메라다. 싱글 렌즈 리플렉스인 SLR 기종은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촬영하기 쉽고 선택할 수 있는 렌즈의 종류도 많다. 하지만 사진을 업으로 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기능을 과연 얼마나 사용할까. 그리고 어차피 생활 필수품이 아닌 이상에야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일차적인 편리함을 뛰어넘는 이유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SLR 카메라가 대세지만 독일에서 먼저 발달한 것은 레인지 파인더인 RF 카메라였다. 쉽게 생각하면 둘의 차이는 바디 안에 미러가 있느냐 없느냐다. SLR 카메라는 바디 안에 렌즈와 마주보며 비스듬하게 미러가 자리잡아,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여기에 반사되어 뷰파인더를 통해 보여진다. 하지만 RF 카메라 경우는, 뷰파인더는 뷰파인더 대로 빛을 받아들여 촬영자가 피사체를 볼 수 있게 하고,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은 곧장 필름면을 향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촬영할 때 보는 장면과 실제로 찍힌 사진은 다르게 마련이다. 불편하다고? 솔직히 익숙해지기 전까진 불편하다. 하지만 오히려 여기에서 RF의 매력을 발견한다.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무엇이라 정의해야 좋을까라고 고민하다 대표적인
RF카메라인 라이카 M 기종을 오래 사용했던 사진가 병훈에게 물었다. RF SLR보다 해상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기계적인 구조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자리가 파할 즈음에야 결론처럼 덧붙인 말은 이랬다. RF 카메라는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애태우게 하는 여자친구다. 너무 금방 알게 되는 기계도, 여자도 재미없지 않나. RF는 사람 손에 길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길들인다. 그래 바로 이 묘사가 정확하다.

에디터의 필름 카메라는 역시 RF 방식인 콘탁스 G2. 니콘 SLR 기종을 쓰다가 바꾼 뒤로, 사진을 찍을 때 좀더 조심스럽다. 찍을 때는 정확히 어떤 장면이 사진에 담길지 볼 수가 없으니, 예측하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감을 익히고 익숙해진 지금은 시차 차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의도에서 벗어나 찍힌 사진을 보는 것이 오히려 즐거울 때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연성을 즐길 수 있다면 RF는 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찍은 아니라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이다.


라이카의
M 시리즈 이후로 나온 RF 카메라는 많지 않다.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라이카 렌즈를 사용할 수 있는 기종이 많다는 것 외에도 클래식한 생김새를 갖췄다는 것이다. 디지털로 변종을 이루면서조차 여기에는 변함이 없다. RF 디지털 카메라로는 엡손에서 내놓은 R-D1과 그 후속 기종으로 올해 나온 R-D1s, 라이카 M8. 엄밀히 말하자면 디지털 카메라가 RF의 매력을 온전히 살릴 수는 없다. LCD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사진만 남기고 골라내고 다시 찍을 수 있으니 사진 찍는 훈련이 아니라 사진 고르는 훈련을 시킬 뿐이니까. 그럼에도 RF 디지털 카메라가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물려받은 RF 카메라의 아우라 때문이다.


결국 카메라를 오래 사용할수록 남는 것은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다
. 클래식한 생김새, 손 안에 아담하게 들어오는 몸집, SLR 카메라의 미러가 움직이며 나는 요란한 소리와 달리 섬세하면서도 명쾌한 셔터 소리. 여기에 내가 지금 뷰파인더로 보고 있는 장면에서 살짝 비껴가 찍힐 사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이 더해진다. SLR의 커다란 줌 렌즈를 마주하면 피사체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움츠러들기 쉽지만, 작고 조용한 RF 카메라는 사람들 안에 숨어 들기 유리하다. 그러니 RF가 빛을 발하는 것은 정색을 하고 의도한 대로의 사진을 찍으려 할 때보다 일상을 기록할 때다.

마치 라이카 광고 문구처럼 많이 쓰이며 진부해진 예지만, 라이카 M만을 고집한 사진가 브레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찰나에 드러나는 피사체의 정수를 사진에 담아낸다는 사진 철학을 갖고 있었으며, 상대가 사진 찍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간을 잡아냈다. 라이카 M이 먼저인지, 브레송의 사진 철학이 먼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둘은 닮았다. 그 덕분에 브레송에게 일상 속의 무심한 표정을 들켜버린 까뮈와 자코메티의 얼굴이 지금까지 기억될 수 있다.

<루엘>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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