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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음 속에서 탄생한 나라_아이슬란드

불과 얼음 속에서 탄생한 나라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과 빙하의 침식이 만들어 낸 땅, 북대서양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진 아이슬란드는 얼음 벌판과 화산암 사막, 짧은 풀과 이끼가 자라는 툰드라 대지로 이루어진 섬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화산과 거대한 빙하가 만들어 내는 이 섬의 황량한 모습은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는 1000여 년 동안 척박한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이 땅을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가꾸어 온 사람들의 체취가 섞여 있다.


태초에 긴눙가가프라 불리는 공허가 있었다.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인 긴눙가가프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눈과 얼음이 지배하는 영역이, 남쪽에는 불이 지배하는 영역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북쪽에서 얼어붙은 물줄기가 내려와 긴눙가가프를 얼음으로 채웠고, 남쪽의 불꽃이 내보낸 뜨거운 열기가 그 위를 덮쳐 얼음을 녹였다. 그리고 녹아내린 얼음에서 최초의 생명, 거인 위미르가 태어났다. 위미르의 몸에서는 다른 거인들과,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들이 솟아났다. 역시 긴눙가가프의 얼음에서 생겨난 신들은 위미르에게서 자꾸 거인들이 생겨나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결국 최고의 신 오딘은 형제들과 힘을 합쳐 위미르를 죽이고 그 몸으로 땅과 하늘, 바다를 만들어 세상을 창조했다.
불과 얼음이 결합해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이 창조 신화는 단지 아이슬란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이웃의 북유럽 나라들이 공유하는 신화이며, 더 넓게는 북유럽에 뿌리를 내린 노르만인들의 조상인 고대 게르만족에게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이 불과 얼음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신화가 북유럽 어디에서도 아이슬란드만큼 들어맞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슬란드는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는 섬이다. ‘얼음의 땅’이라는 그 이름을 들으면 온통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황량한 겨울 나라를 상상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거대한 빙산과 빙하, 만년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긴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로 상극인 얼음과 불이 심한 다툼을 벌이며 만들어 낸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괴팍하고 때로는 흉포하기까지 하다. 지금도 화산 활동과 빙하의 침식이 땅의 모양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11월 4일에는 섬의 남동부 빙하 지역에 있는 그림스뵈튼 화산이 폭발했고, 다행히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어서 직접적인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산재가 1만 2000미터 상공까지 솟았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국토의 절반 이상은 화산이 뱉은 어두운 잿빛 바위와 모래로 채워진 황량한 고원과 용암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초록빛이라곤 짧은 풀과 이끼로 이루어진 툰드라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는 이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키 작은 드워프족처럼 땅에 붙어 자라는 관목이 드물게 보일 뿐이다.

활발한 화산 활동과 빙하의 침식이 함께 일어나는 아이슬란드는, 많은 지질학자들에게 지구상에서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연구 공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황량하면서도 경이로운 자연 환경은 인간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평생 동안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비롯해 ‘경이의 여행’ 시리즈로 알려진 80여 편의 모험 소설을 남긴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에게, 아이슬란드는 지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는 곳이었다. 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의 주인공인 독일의 광물학자는 우연히 고대 룬 문자가 쓰여진 수백 년 전의 양피지 조각을 발견한다. 룬 문자는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고대 게르만족의 문자인데, 그 양피지에는 아이슬란드 스네펠스 화산 분화구로 들어가면 지구 중심까지 닿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것을 실마리로 소설 속 인물들은 지구의 몸속을 탐험한다.

모험 소설의 대가인 쥘 베른이 지구 중심으로 들어가는 탐험의 출발지로 아이슬란드를 선택하는 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곳의 독특한 자연 환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덧입혀져 있는 신화와 전설들, 마법의 힘을 가졌다는 룬 문자는 아이슬란드를 상상 모험의 출발지로 손색없게 만들었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땅이었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항해사 피테아스는 무역을 위해 북쪽으로 배를 몰아 영국과 노르웨이에 닿았다. 이 여정에서 그는 영국에서도 북쪽으로 엿새를 더 항해하여 ‘끈적이는 젤리처럼 얼어붙은’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을 목격했으며, 이곳이 ‘세상의 북쪽 끝’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섬이 바로 아이슬란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딴 섬에 인간이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은 피테아스로부터 1000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6세기경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은 그리스인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온 전설 속의 섬을 찾아 북서쪽을 향해 닻을 올렸고, 마침내 겨울에는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섬을 만났다. 이들은 아일랜드로 돌아가 세상의 북쪽 끝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으며, 마침내 8세기에 이르러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이 아이슬란드로 건너와 수도원을 세웠다. 아이슬란드는 가장 가까운 스코틀랜드에서도 8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서 은둔하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그 후 9세기부터 10세기까지 북유럽에 정착해 있던 노르만인 중 정치적 다툼을 피해 노르웨이를 떠난 사람들이 건너오면서, 비로소 아이슬란드는 인간의 역사에서 전설이 아닌 현실의 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이주민들은 새로운 땅에 흩어져 농장을 세웠으며, 오래지 않아 공동체를 구성하고 국가의 형태를 갖춰 나갔다. 오랜 정치적 투쟁과 전제 군주의 권력을 떠나 왔던 아이슬란드의 새 주인들은 민주적인 의회 정치를 선택했다. 레이캬비크 인근, 용암 대지로 이루어진 팅벨리르가 의회를 여는 장소로 낙점되었고, 930년 각 지역의 대표자들이 이곳에 모여 ‘알팅(Alþing)’이라는 의회를 처음으로 열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 하면 흔히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 고대 그리스를 이야기하며, 국민의 대표자가 모여 정치를 의논하는 간접 민주주의는 17세기에 시작된 영국 의회를 최초로 꼽는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알팅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의회였다. 왕정이 일반적이었던 10세기에 아이슬란드인들은 민주적인 의회 정치를 시작했던 것이다.

매년 여름에 2주일 동안 열렸던 알팅에는 각 지역의 대표자들뿐만 아니라 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 알팅은 팅벨리르의 들판에서 ‘법의 바위’라 이름 붙여진 커다란 바위를 중심으로 열렸는데, 식솔을 이끌고 온 농부, 장인, 무역상 등이 야영을 하며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은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때 법의 바위 앞에 나와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었다. 알팅은 1291년 이후 아이슬란드가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명맥을 이어오다 1943년 독립과 함께 다시 과거의 역할을 되찾았다. 지금은 63명의 의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회의는 1881년 레이캬비크에 세워진 의회 건물에서 열린다. 일반인들은 회의장 곁에 마련된 회랑에서 의회 진행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보통 85퍼센트가 넘는 이들의 총선 투표율은 아이슬란드인들의 정치 참여 의식과 그들의 의회 제도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 준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에 대한 언급 역시 빠지지 않는다. 의회가 세워진 이후 12세기 말 노르웨이의 지배를 받기 이전까지, 아이슬란드에서는 사가라고 불리는 시 문학이 발전했다. 이 시기는 아이슬란드 역사에서 황금기로 불리는데, 그때 형성된 사가 문학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아이슬란드의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거친 자연 환경을 견뎌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에야 마침내 독립할 수 있었던 아이슬란드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유럽 대륙에서 ‘이교도’의 땅으로 밀려 들어온 그리스도교는 북유럽의 신들을 모욕하고 굴복시켰다. 그러나 풍족하지 않은 자연 환경과 외세의 지배를 받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아이슬란드가 키워 온 문화적 전통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사람은 자신이 터 잡고 살아가는 땅을 닮게 마련이다. 흔히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거친 자연을 닮았다고들 한다. 영국의 여행 작가인 쟌 모리스는 아이슬란드에 대해 ‘진정으로 전 국민이 유전적으로 괴팍해 보이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뿐이지 않을까?’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모리스가 그녀의 책에서 묘사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단지 괴팍한 것만이 아니라 솔직하고 호쾌하다. 모리스 역시 섬나라인 영국 사람이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이른바 ‘섬나라 근성’과는 인연이 없는 국민성을 가졌다고 적고 있다.

그들의 신화를 보아도 이런 이중성이 존재한다. 북유럽의 신화 속 세계에는 늘 싸움과 천재지변,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신들조차 불사의 존재가 아니어서 세상의 종말을 뜻하는 라그나로크 시기에 늑대와 뱀 등의 괴물들과 싸움을 벌인 오딘과 토르, 로키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신이 죽는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는 기괴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신과 거인족,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족들이 존재한다. 신의 세계 아스가르드와 지하 세계 니플하임 사이에 인간계인 미드가르드가 존재하는데, 미드가르드는 단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대개는 난쟁이라고 쉽게 표현되는 다른 종족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다. 그들이 뒤섞이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각 종족의 서로 다른 특성들만큼이나 다채롭고 환상적이다.

이는 북유럽 신화가 이제 ‘판타지’라는 장르의 새로운 문화 생산물들에서 빠질 수 없는 모티프가 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만하다. 영국인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밑그림 역시 북유럽 신화에서 왔다. 이를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실마리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드워프와 엘프 등 여러 종족의 존재와, 이들과 인간이 살고 있는 미들랜드다. 미들랜드는 바로 북유럽 신화의 미드가르드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중요한 소재인 절대 반지는, 북유럽 신화에서 주인에게 무한정의 힘을 주지만 결국 주인을 죽이고 세계를 멸망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안드바리의 반지와 같다.

북유럽 신화를 오늘날까지 기억되게 한 데는 13세기 아이슬란드의 시인이며 정치가인 스노리 스툴루손의 공이 컸다. 유럽 대륙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4세기경 이미 거의 모든 토착 종교가 사라졌다. 하지만 북유럽은 10세기경에야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으며, 특히 아이슬란드는 거친 바다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외딴 섬이었던 덕분에 개종 이후에도 그들이 지닌 신화와 전설들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보다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13세기 스툴루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고대의 시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산문 ≪에다≫를 썼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채 구전되던 고대의 시들은 몇 편 남지 않았고, 따라서 이제까지 전해지는 고대 북유럽 신화의 대부분은 스툴루손의 작품을 통해 전해졌다. 북유럽인들은 유럽 전역에 퍼져 여러 왕국을 세웠던 게르만족의 후예들이었으니, 이는 곧 유럽 대륙에서는 사라졌던 고대 게르만의 신화와 전통이 변방의 섬나라 덕분에 살아남았음을 뜻한다.

지난 세기 중반에 독립한 이후 아이슬란드는 또다시 그들의 독특한 자연 환경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개성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주어진 자연 자원을 이용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에너지 개발에서 누구보다 앞서가는 나라다. 전체 전력 생산에서 수력 발전이 37퍼센트, 지열 발전이 31퍼센트를 차지해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비율은 3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이들의 지열 발전은 대체 에너지 개발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지열과 함께 온천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는 큰 힘이다. 곳곳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물을 끌어다가 조금만 식히면 되기 때문에 온천욕은 이들에게 일상의 한 부분이다. 수도 레이캬비크에만 해도 최대의 온천 리조트인 블루라군을 포함해 15곳이 넘는 온천 수영장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일 년 내내 문을 여는 이 수영장들에서는 아침 7시부터 출근 전에 온천물에 몸을 담그러 온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한 레이캬비크 지열 지역에 있는 나우톨스비크 해변에서는 온천수가 바닷물과 섞여 물이 따뜻하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다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자연 환경이 가장 큰 자원인 아이슬란드는 경제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더라도 자연을 파괴하는 일에 호락호락 자리를 내주지 않는 나라다. 1제곱킬로미터당 세 명밖에 되지 않는 낮은 인구 밀도도 도움이 되지만, 주어진 자연 환경을 보호하면서 적절하게 이용하려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높은 의식 수준은 이 나라의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해부터 수도 레이캬비크의 거리를 누비는 수소 버스만 보더라도 이들이 환경 보호에서 얼마나 앞서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산업에서 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 수출액의 80퍼센트나 되는데, 현재 어업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알코아사는 대규모 알루미늄 생산에 필요한 전기 공급을 위해 두 개의 빙하를 막아 수력 발전소를 세우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들이 건설할 댐은 주변 지역을 침수시킬 뿐만 아니라 빙하 주변 지역의 생태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보전연합(Iceland Conservation  Association)을 비롯해 시민들의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올해 초 전세계 국가 경쟁력 조사에서 아이슬란드는 세계 5위, 유럽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높은 교육 수준과 기술력, 낮은 환경오염도가 이들이 지닌 힘이다. 또한 최근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 소득 수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안정도와 삶의 만족도 등을 조사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0개국 안에도 아이슬란드가 포함되었다. 유럽 대륙 변방, 불모지나 다름없는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일궈낸 오늘날 아이슬란드의 모습은 그들이 지닌 자부심이 단지 과거에 이룬 문화 전통에 기댄 것만은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지오> 200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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