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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규칙 배우, 니콜러스 케이지

언제부터 니콜러스 케이지가 농담의 대상이 됐을까?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한 ‘케서방’이라서? 가속도가 붙은 탈모 증세와 무기력한 눈빛 때문에? 젊은 시절 흐느적거리던 매력이 퇴색한 건 사실이지만, 그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노잉>은 아직 그가 전성기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이라지만, 니콜러스 케이지의 브로마이드를 침대 맡에 붙여놓는 소녀들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좀 잔인하게 비교하자면, 톰 크루즈나 맷 딜런 같은 또래 배우들이 ‘포지티브’한 에너지를 주는 반면, 케이지는 한없이 ‘네거티브’한 쪽에 가깝다. 처진 눈썹, 일찌감치 체념한 듯한 눈빛, 듣는 이의 멘탈 상태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저음의 목소리. 좋게 말하면 우수에 젖은 이미지인데, 나쁘게 말하면 조금 맹하게 보이는 것도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표정에 여유가 붙긴 했지만, 이런 침울한 이미지는 그의 무명 시절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오디션에 통과하지 못하면 뱃사람이 되어야지.’ 젊은 시절 그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번번이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기회를 날려야 했으니까.

명문 ‘코폴라 가문’의 돌연변이, 자신의 가족을 “이탈리아에서 강도질로 먹고 살던 집안”이라고 표현했던 이상한 남자. 배우로 홀로 서겠답시고 만화 속 영웅 ‘루크 케이지’에서 성을 따왔지만, 그의 초기 시절은 어쩔 수 없이 ‘코폴라’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삼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서 구원받아 주연 자리를 꿰찬 <페기 수 결혼하다>(86)는 이미 유명한 사례. 그때만 해도 코폴라는 연기 못하는 조카 때문에 무던히도 속병을 앓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케이지는 카리스마가 부족했을 뿐 연기에 젬병인 배우는 아니었다. 꽃미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액션을 잘하거나 남을 웃기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끊임없이 감독들의 선택을 받았으니까. 분명 특유의 음산하고 퇴폐적인 매력 때문이었으리라.

니콜러스 케이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더 록>(96) 이전과 이후.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초기 시절을 더 사랑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케이지는 미국 인디 영화들 사이를 어슬렁거렸다. 당시만 해도 제리 브룩하이머나 마이클 베이와는 영 거리가 멀던 시절이었다. 대신 코엔 형제, 앨런 파커, 데이비드 린치, 마이크 피기스 혹은 낯선 이름의 감독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베트남전의 악몽에 시달리는 청춘으로 등장한 <버디>(84), 얼빠진 유괴극의 주인공이었던 <아리조나 유괴사건>(87), 사랑의 황홀경에 빠졌던 <문스트럭>(87), 악몽 속에서 사랑을 찾는 별난 로맨스 <광란의 사랑>(90), 복권 당첨으로 인생이 꼬여버린 경찰로 출연한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94) 등. 특히 <광란의 사랑>에서 건들거리며 ‘Love Me Tender’를 부를 때는,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95)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케이지의 전성기가 계속될 것만 같았다. 이 영화야말로 케이지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매력이 극에 달했던 작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어둠과 허무에서 벗어나, 너무나 명확한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더 록>(96) <콘 에어>(97) <페이스 오프>(97)를 시작으로, 꼭 그가 하지 않아도 될 블록버스터 출연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댑테이션>(02)처럼 숨막힐 듯한 명연기를 보여준 작품도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케이지의 관심은 온통 버짓이 큰 영화들에 쏠렸다. 덕분에 2천만 달러 개런티가 보장된 특급 스타가 된 반면,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없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15살 때 <에덴의 동쪽>(55)을 보고 제임스 딘의 연기에 반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던 케이지. 많은 사람들이 제2의 말론 브랜도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는 웨슬리 스나입스의 전철을 밟는 듯 보였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노잉>(09) 역시, 케이지가 2000년대 들어 출연했던 블록버스터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오웬 글리버맨은 우려 섞인 칼럼을 게재할 정도였다. 요지는 이렇다. “니콜러스 케이지는 예술가인가, 돈벌레인가? 그는 언제쯤 훌륭한 영화에 출연할 것인가?”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제쳐두고라도, <노잉>에서 케이지는 그 흔한 블록버스터의 영웅이 아니었다. 숫자로 예견된 지구 종말. 영화 속 케이지는 천체 물리학자의 신분으로 종말을 막을 임무를 지니고 있지만, 그는 영웅이기 이전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장일 뿐이다. 불안과 허무, 체념과 슬픔 등 <노잉>에는 케이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집약되어 있다. “니콜러스 케이지에게는 두 가지 스피드가 있다. 강렬한 것과 더 강렬한 것. 그는 속도의 한계가 없는 배우다.” 누구보다 <노잉>에 열광했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노잉>을 기점으로, 케이지의 관심사는 조금 더 명확해진 듯 보인다. “나는 이런 SF 판타지 장르를 계속 하고 싶다. 이런 영화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100퍼센트 믿을 필요는 없다. 그의 차기작 리스트를 보면, 액션 코미디 <킥-애스 Kick-Ass>,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범죄 드라마 <나쁜 경찰>, 판타지 어드벤처 <마녀의 계절 Season of the Witch> 등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어느새 그는 스스로 공식과 통념을 파괴하는 ‘무규칙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범죄자처럼 룰을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언제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던 자신의 ‘배우론’을, 니콜러스 케이지는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러니 이젠 그가 어떤 배우인지, 어떤 연기를 하는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가 어떤 것이든간에.

<SCREEN> 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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