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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port


 
Airport

난리법석을 떨던 베이징의 새 공항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불편하기로 악명 높던 히드로 공항은 새 터미널로 체면치레를 했다. 1962년 완공된 JKF의 팬암 월드포트는 지난 세기 공항 역사의 전설이었지만 올해 뉴욕이 발표한 JFK 공항 재건축 계획에 의하면 곧 사라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항공 역사의 다음 전설이 될 공항은 어디일까.

 

핀란드 건축가 에로 사리넨이 뉴욕 JKF 공항에 TWA 항공사를 위한 터미널을 설계했을 때, 그는 21세기의 공항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들만큼 골치 아프진 않았을 거다. 50년이 흐르는 동안 공항 건축의 기본 매뉴얼에 추가된 목록, 까다로운 기술적인 조건들은 한 없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건 거대한 방을 기계로 한가득 채워야 고작 8비트 성능을 냈던 초기 컴퓨터와, 손 안에 들어오는 크기에 테라바이트 운운하는 오늘날 컴퓨터 사이 간극만큼이나 크다. JKF 공항의 또 다른 전설이며, 세계 항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 팬암 항공사 터미널 역시 마찬가지다. 일개 항공사의 터미널이었음에도월드포트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로 오만했지만, 그 오만함이 수긍될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 하지만 이 터미널 역시 올해 지어졌다면, 지금의 공항 건축 기준으로 함량 미달이다.

21세기의 항공 여행, 21세기의 공항 디자인이 바뀌고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 우선 보안 검사 절차부터 길고 복잡해지는 추세 아닌가.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하기 위해 공항에서 필요한 여유 시간은 2시간이었다. 사실 작은 공항에서라면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게 보딩 절차다. 1시간이 뭔가, 극단적인 예로 캄보디아 시엠렙의 공항에선30분이면 된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런던 히드로 출발 항공편을 이용할라치면 당장 항공사에서 이메일부터 날아온다. 혼잡이 예상되니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라는 경고성 안내문이다. 거기엔 핸드캐리할 수 있는 짐의 제한 규정, 액체류 반입 금지 조건들이 따라붙는다. 결과적으로 엄격해진 보안 절차 때문에 결국 여행객들은 더 많은 시간을 공항 안에서 지내야 한다. 테러리즘자체가 위협하는 게 아니라,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항공 여행을 위협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빈도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 버스나 기차 타듯 비행기를 타는 시대를 살게 될 거라는 아버지 세대의 예언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해가 지면 밤이 오는 걸 아는 것만큼 자명한 전망이었다. 항공사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얘기다. 대형 항공사만이 아니라 짧은 노선에 주력하는 작은 항공사들, 비즈니스 제트기 항공사들까지 모두 합해서 말이다. 테러리즘과, 2배씩 뛰어오르곤 하는 기름값의 위협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해도,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멀리 여행하기 위해 비행기를 더 많이 이용할 것이다. 일이든 놀이든 이유는 넘쳐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공항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긴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 <LUEL>20078월호에서 현직 파일럿의 글을 통해 최악의 공항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히드로 공항을 필두로, 뉴욕 JFK, 파리 샤를드골 공항도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공항들이 이 따위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성장한 이 도시의 공항들이 급증하는 항공 여행객들의 요구에 재빠르게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최악의 공항은 세네갈 다카르 공항이었다. 하지만 치안이 불안한 아프리카 국가의 공항과 유엔 상임이사국들의 공항을 나란히 줄 세우는 건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시합을 주선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불공평한 일이니 논외로 쳐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주목하고
, 이야기하고픈 공항들은 이맛살 찌푸리게 만드는 흉악한 공항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공항들이다. 공항을 처음 이용하는 여행객도 내부에서 헤매지 않게 해주는 효율적인 동선과 유용한 안내 문구들, 공항 바깥과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편, 짜증이 치밀어오르기 전에 짐을 찾게 해주는 화물 시스템, 여행객들이 보딩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낼 충분한 공간과 편의 시설, 피로감을 덜도록 세심하게 고안된 조명, 공기 순환 시스템. 여기에 친절한 공항 직원들과, 구색 갖춤이 아니라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쇼핑 구역까지 있다면 정말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비행기 타고 먼 나라로 날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던 1960년대보다, 공항은 훨씬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는 이야기다. 싱가포르 항공사와 함께 만인의 칭찬을 받은 창이 공항이 지금껏완소공항의 지위를 누려왔던 건, 이 모든 조건에 마사지 시설과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 한두 가지 조건이 더 얹어져야 한다
. 지구 전체의 화두인 환경과 에너지 효율성이 바로 그 새로운 조건들이다. 하긴 건물 규모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수를 따져보면 자이언트급인 건물들이 효율성, 친환경성을 빼놓고 살아남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항 건축 프로젝트란 것이 설계안 승인이 나는 데만도 몇 년, 때로는 10년 넘게 걸리고, 짓는데 다시 5년 넘게 걸리는 게 보통이다 보니,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부응하는 공항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거다.


최근 완성된 공항 터미널 또는 극찬까진 아니어도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공항들의 스펙을 살펴보면 지금 공항 건물들의 기본 규칙 몇 가지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 초기 공사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 유지 비용을 줄일 것, 열 효율을 위해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할 것, 어마어마한 물 이용량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고안할 것, 환경 친화적인 자재를 사용할 것. 이는 오래 가고 재활용 가능한 자재라는 뜻이다. 공항은 비행기를 안전하게 이착륙시키는 정밀한 기능에도 부응해야 하지만 수많은 어마어마한 이용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속성을 가진 건축물이다. 그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문제없이 피가 돌고 공기가 통하고, 에너지 효율성까지 고려하는 추세는 최근 몇 년 사이 지어진 모든 공항 건축물들의 과제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 일단 외관부터가 근사하다. 공항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도 한다. 유명 건축가를 모셔다 설계를 시키고, 감탄이 나오는 공항 외관 사진들을 온갖 미디어에 내거는 경우가 허다한 건 그 때문이다. 렌조 피아노의 간사이 공항, 아직 완성되지 못한 프랭크 게리의 베니스 공항, 최근 완성된 노만 포스터의 베이징 공항처럼. 하지만 속지는 마시길. 공항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건 외양이 아니라, 내부다. 실제로 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 중 몇 명이나 공항의 전체 외관을 조망할 기회를 가질까? 공항의 겉 모양을 기억하는 건 파일럿들, 그리고 건축 전문가들 정도 아닌가. 여행객들이 기억하는 건 공항 내부가 얼마나 쾌적하고 시간을 보낼 만한 공간이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베이징 공항을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우주선 기지라 해도 믿을 만큼 환상적이다. 하지만 겉 모습이 멋있다고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이 괴롭지 않을 거라고 보장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봐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우선
2006년 초에 문을 연 이후로 근사한 생김새만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에서도 칭찬받아온 공항으로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의 제 4 터미널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이 멋있는 첫 번재 이유는 사실 일반 이용객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부분이다. 바로 모듈 디자인이라는 아이디어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18x9m의 모듈로 나눠 설계되었다. 방안지처럼 나눠진 이 모듈 한 칸을 기본 단위로 해서 공간을 만들고 기능을 나눴다. 이런 방식이 가져올 이득은 지금 당장보다 미래에 있다. 이 터미널의 수용력을 늘리고 싶으면 모듈을 몇 개 더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용객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찬사를 보내는 물결 치는 천정은, 모듈 디자인에서 만들어진 반복적인 패턴이다. 싸인 곡선을 무한 확장해 물결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천정에 쓰인 자재는 대나무라니, 듣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물결을 따라 높낮이를 달리하는 대나무 구조물 위에는 자연광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지붕이 얹어졌다. 빛은 대나무에 부딪혀 내려오며 부드럽게 실내를 밝힌다.


인공 조명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자연광을 활용하는 것은 지금 공항 건축의 빅 트렌드다
. 이만한 공간을 밝히기 위해 드는 전기 에너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올해 1월 문을 연 싱가포르 창이 공항 제 3 터미널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SOM이 설계한 지붕과 천정의 구조다. 무려 919개의 천창이 달려 있는데, 천창 바깥 부분에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반사판이 달려 있다. 이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열대 기후의 뜨거운 열기는 차단하면서 빛은 최대한 받아들이는 가장 적합한 각도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세삼하게 설계된 천정과 함께 실내에 조성된 거대한 정원이 이 공항의 쾌적함을 더한다. 방대한 정원이긴 한데, 공항의 평면 면적을 잡아먹진 않는 정원이다. 7층 높이의 이 터미널에는 5층 높이벽 정원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300미터에 이르는 메인홀의 벽에 붙어 있는, 물줄기가 간간이 흐르고 식물이 울창하게 자라는 정원이다. 천장 구조, 자연광 활용은 올해 3월 문을 연 베이징 공항과 상하이 푸동 공항 제 2 터미널, 런던 히드로 공항 제 5 터미널도 마찬가지다.


히드로 제
5 터미널은 그동안 여객기의 비행 고도만큼 치솟았던 불만과 비난을 잠재운 건물이다. 건축 쓰레기가 지구상 모든 쓰레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아시는지? 히드로 5 터미널 내부의 모든 시설은 외부의 건물 기본 틀에서 독립된 철제 구조물 안에 배치되었다. 이 말은, 나중에 이 터미널을 레노베이션 하게 될 때, 내부의 구조물을 단위별로 뜯어내 그대로 다른 건축물에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재활용을 염두에 둔 설계다. 그리고 이용객들이 직접 느끼는 부분들, 쾌적함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조도를 낮춘 인공 조명에 피로감을 더하는 형광 불빛 따위 없다. 지저분한 카페트가 깔려서 카트를 끄는데 힘만 더 들게 하는 기존 히드로 터미널과 달리, 바닥은 석재와 반질반질한 월넛 목재로 되어 있다. 막힘 없이 트인 홀에서는 출발 게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등대처럼 거대한 타워가 세워져 있다. 덧붙이자면, 이곳은 브리티시 에어라인이 많은 투자를 해 지어진, 브리티시 에어라인 전용 터미널이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빛나는 샴페인 바가 있고, 승객 대기홀을 비트라의 가죽 의자가 채우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지?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가 아니라 모든 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이야기하는 거다. 이용객들이 최대한 즐겁게 시간을 보내도록, 그래서 공항의 수입도 늘어날 수 있도록 이만저만 세심하게 손질한 게 아니다. 여기에 86억 달러가 들긴 했지만 이 투자 덕분에 히드로 공항과 브리티시 에어라인에 대한 평가는 상승 곡선을 타는 중이다.


빅 네임 노먼 포스터가 설계를 맡은 데다 올림픽 덕분에 미디어에 지겹도록 오르내리는 현존 최대의 베이징 공항을 빼놓을 수 없다
. 우선 이용객들이 가장 먼저 감탄하는 것은 실내의 색이다. 아래층은 붉은색부터 노란색까지 16단계에 걸쳐 색이 변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승객이라면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3.25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공항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베이징 공항은 정말 거대하지만 가운데 홀을 중심으로 모든 시설을 컴팩트하게 갖춰서 건물이 차지하는 지면 면적은 줄였다. 집약적인 구조는 에너지 효율에도 기본적인 요건이다. 또한 남동향으로 배치해서 낮의 태양열과 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게 했으며, 엄격한 에너지 컨트롤 시스템을 갖췄다. 에너지 효율성은 운영 비용을 낮추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베이징과 같은 날, 올림픽 준비에 맞춰 문을 연 상하이 푸동 공항 역시 에너지 효율성을 고민해 지어진 건물이다.


그런데 노먼 포스터가 베이징 공항 설계에서 고민했던 에너지 효율의 아이디어가 한발 더 나간 곳이 있다
. 바로 뉴멕시코 스페이스포트, 우주 공항 프로젝트다. 2010년 완공될 이곳 뉴멕시코 사막의 기지는 흙으로 건물 지지대를 마련하고, 광전지로 전기를 생산하며 물은 계속해서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출 거다. 이 땅에 넘쳐나는 흙과 태양 에너지를 활용하고, 귀한 물은 아끼려는 것이다.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이 이곳 스페이스포트에서 야심차게 첫 상업 비행 우주선을 띄우는 날이면, 자연광으로 실내 조명을 해결하는 정도는 아주 기초적인 기술이 될 거다.

올해 하반기에는 뉴욕 JKF 공항의 제 5 터미널이 완성된다.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옛 TWA 터미널 건물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터미널이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문을 열까 궁금하다. 일단 뉴욕인데, 세계의 트렌드에서 하나라도 뒤쳐지면 서운하지 않겠는가. 

<루엘> 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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