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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

PAGES IN HISTORY

 

참호에서 태어나 세계를 정복한

트렌치코트

 

매년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할 때 빠지지 않는 아이템인 트렌치코트. 참호를 뜻하는 이름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긴 하지만, 지난 세기를 거치며 가장 오랫동안 널리 사랑 받아 온 이 옷의 태생이 전쟁터였다는 것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1853

1951년 런던 리젠트 거리에 처음 양복점을 연 아쿠아스큐텀의 창시자 존 에이머리가 영국의 습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에 적합한 방수 처리 모직을 개발했다. 본래 양모에는 천연 오일이 포함되어 있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지만, 양모를 가공해 옷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생을 위해 이 오일을 제거해야만 했다. 결국 비가 오는 날 모직 코트를 입으면 이내 물에 젖어 무거워지게 된다. 당시는 1952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힘 입어 영국에서 많은 산업 발명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는데, 존 에이머리는 부드럽고 공기가 잘 통하는 천연 모직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옷감을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천에 라틴어로 물과 방패를 뜻하는 아쿠아(Aqua)’스큐텀(Scutum)’을 합성해 아쿠아스큐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로 아쿠아스큐텀은 이 방수천으로 만든 옷의 이름으로도 불리워졌다. 초창기의 아쿠아스큐텀은 남성복만을 만들었지만 1900년대에 들어 여성용 레인코트도 제작하기에 이른다.

 

1854

1854 3월부터 1856년까지 흑해 크리미아 반도에서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 연합군과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러시아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바로 나이팅게일의 이름으로 가장 잘 알려진 크리미아 전쟁이다. 아직 트렌치코트라는 이름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당시 영국군 장교들은 아쿠아스큐텀이 제작한 레인코트를 입었다. 

 

1888

1956년 햄프셔에서 포목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토머스 버버리는 농부들의 작업복으로 쓰이는 린넨 천의 뛰어난 방수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새로운 옷감을 개발했다. 당시 흔히 쓰던 방법으로 옷감에 고무를 입히면 물은 막을 수 있지만 공기가 통하지 않고 활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천연 직물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방수 기능을 더하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 면사에 방수 처리를 한 뒤, 섬유 조직이 비스듬하게 짜여지는 능직 방식으로 촘촘하게 옷감을 직조하고, 다시 한번 방수 처리를 해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 옷감을 만들었다. 이 천은 통기성과 내구성도 뛰어나서 매우 실용적이었다.

개버딘이라 이름 붙인 이 옷감으로 토머스 버버리는 1888년 특허를 받았다. 개버딘은 레인코트를 만드는 데 유용했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용품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극 지방 탐험가나 기구, 비행기 조종사들의 옷에도 쓰였다. 또한 버버리는 개버딘을 이용해 1900년대 초반부터 영국군 장교들의 레인코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1897

아쿠아스큐텀은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의 레인코트를 주문받아 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아쿠아스큐텀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왕족들의 대표적인 레인코트 제작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처럼 여름이면 집중호우가 내리곤 하는 기후에서는 얘기가 달라지지만, 마치 안개 같은 부슬비가 내려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스며들어 옷을 젖게 하고 몸을 시리게 하는 영국의 기후에서 방수 기능이 있는 레인코트는 필수 아이템이다. 또한 날씨에 따라 때고 붙일 수 있는 안감이 있어서 보온성도 뛰어났다.

 

1914~1918

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군 장교들은 아쿠아스큐텀과 버버리가 제작한 레인코트를 입었다. 춥고 습기찬 참호 속에서 눈과 비, 온갖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적과 대치해야 했던 군인들에게 물에 잘 젖지 않고 튼튼한 레인코트는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전쟁터라는 특수한 환경에 적합하도록 디자인이 변형되었다. 우선 어깨에는 장교들의 제복에 있는 견장이 달렸고, 앞 가슴과 등판에는 옷자락이 한 겹 덧대어졌다.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옷깃을 여미고 소매를 조일 수 있는 끈이 허리와 손목 둘레에 달렸다. 허리에는 구리로 만든 D자 모양 고리를 달았는데, 이는 군인들이 수류탄이나 칼, 권총을 고정하는 용도로 쓰였다. 이런 디자인은 고전적인 트렌치코트의 형태로 자리잡았으며,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트렌치코트라는 이름이 불려지기 시작했다.

 

1920s~1930s

남자용 트렌치코트를 입은 독일의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 전쟁의 영향은 민간인들의 옷차림에서도 나타났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영국군 장교들의 모습이 인기를 끌면서, 트렌치코트는 1920년대를 거치며 일반 사람들에게 레인코트용으로 팔리게 되었다. 1930년대까지는 유럽을 건너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 또한 여성도 트렌치코트를 입기 시작했다.

 

1939~1945

2차 세계대전 동안 트렌치코트는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등 국적을 막론하고 군인들의 일반적인 제복이었다. 1933년부터 1945년의 패전까지 활동한 나치당은 전시의 특별한 분위기를 패션에서도 이용했는데, 나치 SS친위대는 검은색 가죽으로 만든 트렌치코트를 입어 공포감을 조성하고 위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 역시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종종 등장했는데,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대표적이다.

 

1940s

트렌치코트는 단지 전쟁터에서만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 이은 1929년의 경제 대공황, 1936년부터 1939년까지의 스페인 내전, 그리고 다시 찾아온 세계대전으로 전쟁의 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밀리터리 룩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유틸리티 패션이 유행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시의 참호에서 태어난 트렌치코트는 많은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또한 전쟁의 그림자 속에 만들어진 누아르와 스릴러 영화들에서 트렌치코트는 비밀 요원이나 사설 탐정의 의상으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렌치코트는 그 시절의 전쟁을 경험하고, 사회의 주류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는 인물들의 냉소적이며 비밀스러운 성격과 잘 어울리는 의상이었다. 특히 험프리 보가트는 1941 <말타의 매>, 1942 <카사블랑카>에 출연하며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특히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에서 트렌치코트를 입은 험프리 보가트의 모습은 여전히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그가 입은 트렌치코트는 약간은 삐딱하고 냉소적이지만 결국은 정의롭고 로맨틱한 주인공의 캐릭터와, 안개 낀 공항이라는 배경과 잘 어울린다. 이후로도 영화 속에서 트렌치코트는 형사나 탐정, 갱들을 비롯해 어딘가 비밀을 숨긴 듯한 등장인물의 유니폼처럼 등장한다
 

1950s

1950년 트렌치코트를 입은 미국의 코미디언 잭 베니와 가수이며 배우인 프랭크 시나트라(왼쪽). 1956년 파리의 거리에서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배우 게리 쿠퍼(오른쪽). 전쟁의 기운이 물러가고, TV의 보급과 함께 시작된 대중문화와 소비주의는 화려한 유명 인사들의 모습을 쉽게 전파하여, 빠르게 세계 공통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패션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트렌치코트 역시 전쟁터라는 태생이 무색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유행의 물결을 탔다. 물론 여기에는 유럽의 왕족부터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나 가수들이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 모습이 자극제가 되었다. 특히 이 시절의 오드리 헵번은 허리띠로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스크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남성적인 힘을 강조하는 이 옷이 지극히 여성적인 실루엣으로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1960s

디자이너 에드워드 만의 경찰과 도둑들이라는 콜렉션을 선보이는 모델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트렌치코트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베이지색이나 카키색 일색이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상의 트렌치코트가 등장하고, 새로운 소재가 도입되었으며, 발목이나 무릎까지 오던 길이를 짧게 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트렌치코트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매년 새로운 디자인을 발표하며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사랑 받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1970s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 1970년대와 1980년대 마가렛 대처는 여성의 사회적 힘을 보여 주는 인물이었으며, 트렌치코트를 비롯해 대처가 즐겨 입었던 옷차림은 그녀의 성격을 대변해 주었다. 여군의 참전이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유럽에서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지고, 1960년대 후반 본격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된 이래로 여성의 사회 활동은 기존의 여성성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군대라는 조직이 대표하는 남성적인 권력이 애초 트렌치코트가 지닌 하나의 얼굴이었다면, 여성이 새로이 획득해가는 힘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동시에 담는 옷차림 중 하나가 여성의 트렌치코트였다.

 

<모닝캄> 200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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