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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cartman

<예언자> 리뷰

19살 소년이 감옥에서 완성한 ‘나쁜 교육’

<예언자>는 19살 아랍계 소년 말리크(타하르 라힘)가 갓 교도소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말리크는 경찰폭행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고, 이제 소년원을 떠나 어른들과 함께 복역해야 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154분의 긴 러닝타임 중 주인공의 가장 순수한 얼굴을 접하게 된다. 비록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왔지만, 말리크는 아직 비열한 세계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가족도, 친구도 없으며,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도덕적 딜레마를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말리크는 현재 백지상태다. 감옥을 평정하던 코르시카계 갱 두목 루치아니(닐스 아르스트럽)가 그를 눈여겨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말리크의 순수성이 훼손된 시점은, 루치아니의 강요로 같은 아랍인 레예브(히켐 야코비)를 살해하면서부터다. 첫 임무를 완수한 후, 말리크는 루치아니의 신뢰를 얻으며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영웅 알베르> <내 마음을 읽어봐>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등,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는 발표되는 족족 시상식으로 직행하곤 했다. <예언자> 역시 200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비롯 각종 유럽영화제 수상에 이어, 2010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일찌감치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영화는 말리크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해, 감옥을 나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감옥영화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에게 감옥이란 자유의 반대말 같은 곳이 아니다. 아랍 범죄자들과 코르시카계 갱들이 대립한다는 점에서 감옥은 곧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이며, 19살 소년이 세상을 배우는 학교나 다름없다. 또한 감옥은 폭력과 공포가 난무하는 공간인 동시에, 역설적인 의미의 자유가 떠도는 곳이다. 감옥이 지닌 이 흥미로운 이중성을, 자크 오디아르는 냉혹한 심리 드라마 속에 담는다.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교육시키는가. 이는 자크 오디아르의 오랜 관심사이자 <예언자>를 지배하는 큰 물음이다. 아주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말리크는 좁은 감옥에서 세상을 배워나간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감옥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곧 말리크의 스승이 된다. 번번이 말리크를 괴롭히는 루치아니는 세상이 잔혹한 곳임을 일깨워주며, 말리크가 감옥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 리야드(아델 벤체리프)는 글을 가르쳐주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수감된 죄수 조르디(레다 카텝)는 마약 사업을 하자고 부추겼으니, 말리크의 숨은 비즈니스 감각을 일깨워준 셈이다. 심지어 말리크의 첫 살인 대상이 된 레예브는 가장 중요한 조력자다. 그는 말리크의 환영 속에 유령으로 나타나, 말리크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모든 ‘교육’ 끝에 말리크는 아랍인으로서, 비열한 거리에 선 어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다윈의 진화론을 연상시키듯, <예언자>는 말리크가 정체성의 빈칸을 채워가는 모습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루치아니란 존재가 없었다면 이 퍼즐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루치아니와 말리크는 거울 같은 존재이자, 지렛대를 마주보고 선 인물들이다. 처음에 말리크는 루치아니의 사소한 심부름에서 살인 명령까지 말없이 이행했다. 이때 괴롭히는 자와 괴롭힘을 당하는 자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말리크의 눈빛은 점점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레예브의 유령이 조언하는 대로 운명을 예언하는 법을 터득하고, 더 나아가 직접 운명을 만들기에 이른다. 반면 말리크가 점점 강해질수록 루치아니는 급격하게 추락한다. 루치아니는 이 감옥을 지배하는 자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독 속에 죽어가는 인물이다. 영화는 두 인물, 즉 멘토와 제자의 쇠락과 성장을 비정하게 바라본다.

앞서 감옥영화의 관습을 피해갔다고 말했지만, 사실 <예언자>는 갱스터 누아르의 익숙한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범죄영화다. 마초들의 대결, 불타는 낙엽, 황량한 거리 등은 70년대 프랑스 범죄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개인이 범죄에 물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마틴 스콜세지나 브라이언 드 팔머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크 오디아르는 선배 감독들이 구축한 장르적 장치를 효과적으로 조합해놓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장르적 표현을 넘어 결국 냉혹한 심리 드라마에 있다. <예언자>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의 잔인한 진실을 따라간다. 무(無)나 다름없었던 소년은 어떻게 예언자가 되는가. 이 물음의 풀이가 완성되는 순간, <예언자>가 긴 러닝타임을 이겨낼 가치가 있는 영화임을 깨닫게 된다. 돌이켜 보면, 이 영화에서 버려도 될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넥스트플러스>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