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rtpolio/ryucat

디자이너 톰 딕슨 인터뷰




DESIGN FOR LIFE

지금 생존해 있는 제품 디자이너 중에 경매에서 최고가에 거래되는 인물은 필립 스탁, 마크 뉴슨을 비롯해 몇 되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톰 딕슨이다. 이탈리아 인테리어 브랜드 카펠리니에 발탁되어 만든 의자가 뉴욕 MOMA에 영구소장품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지금 디자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빅 네임이다.

  

홍대 앞 aA디자인뮤지엄 개관식에 초대된 영국의 디자이너 톰 딕슨을 만났다. 런던에서 날아온 그는 서울에 고작 2 3일을 묵었다. 저녁에 도착해 이틀 뒤 이른 오후에 떠나는 일정이라 실질적으론 하루를 겨우 넘기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의 일정표는 서울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눠 둘러보는 계획까지 포함해 야심차게도 채워져 있었다. 신문, 잡지의 인터뷰와 디자인뮤지엄 개관 행사에서의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그가 지쳐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곤하겠다, 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니 아니 뭐 별로 그렇지도 않다. 진짜 일을 할 때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걸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 읽은 언론 기사들이며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은 마치 그를 어쩌다 운 좋게 거장이 된 사내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 정규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친구로부터 오토바이 수리를 위한 용접 기술을 하루만에 배운 뒤로 이것저것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가 어울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 뭔가를 만들어달라는 일거리를 의뢰받기 시작해 결국 제품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식이다.

그는 젠체 하지 않고 어려운 말 따위는 늘어놓지 않는다. 그의 디자인 제품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미러 볼 램프를 설명하면서 그는 가장 큰 실수가 가장 큰 행운이 되기도 한다며 웃었다. 우주비행사의 헬맷을 보고 디자인 한 미러 볼 램프는 원래 표면을 스텔스기의 폭탄처럼 비치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생각과 반대로 이 램프는 볼록 거울처럼 주변을 선명하게 반사하는 물건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더라. 다행이지 뭔가.

하지만 이런 장난스런 태도만으로 그를 판단할 순 없다. 지난해 그가 트라팔가 광장에서 벌였던 이벤트 대 의자 채가기(Great Chair Grab). 마치 영화 <대탈주>의 제목 같은 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 넘치는 그의 머릿속을 엿보게 해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플라스틱 의자 500개를 광장에 늘어놓고 이틀 뒤에 누구든 와서 의자를 무료로 집어가라고 홍보한 것뿐이다. 그리고 의자를 가져가라고 한 당일, 7분만에 의자 500개가 사라졌다. 런던 사람들이 탐욕스럽다는 농담을 덧붙이며 웃어넘기지만 그는 단지 재미로 이런 이벤트를 마련한 게 아니다. 디자인 제품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소유하기 어렵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이랬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는 주기만 한 게 아니라, 브랜드 톰 딕슨을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의 기회를 얻었다. 구글이 하듯이,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주를 끌어오는 식의 마케팅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벤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나눠준 단순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의자 중 하나에 구리를 입힌 스페셜 버전을 만들었다. 마치 산호나 식물이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같은 몰딩으로 찍어낸 의자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의 의자가 탄생했다.

그가 아이디어를 얻는 곳은 예술보다는 기술의 영역에 속하는 사물들이 많다. 콘 라이트는 사진가들이 쓰는 고깔 모양 조명 장비를 보고, 비트 라이트는 인도에 여행 갔다가 자이푸르 지방의 수공예품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손으로 두드려서 금속을 가공해 그릇 등을 만든다. 중국의 대량 생산 제품들에 밀려서 잘 팔리지 않게 된 섬세한 수공예품들이다. 인도 금속 공예품들의 곰보 자국 같은 겉면은, 비트 라이트의 안쪽 면의 굴곡진 표면이 되어 빛을 아름답게 반사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아티스트라기보단 인더스트리얼리스트로 칭한다. 언제나 심미보다 실용, 기능을 먼저 생각한다. 초창기 자신에게 영감을 준 것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엔지니어였다고 말한다. 1980년대에 영국 어디에나 흔하던 고철더미가 자신의 놀이터였고 그 버려진 재료들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즐거웠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의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다면 세계적인 현대 미술관들이 그의 제품을 영구 소장품으로 들여놓을 리 만무하다. 1989년 그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인 브랜드 카펠리니를 위해 만든 S-체어.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출발점이었던 이 의자는 디자인계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인정받아 뉴욕 MOMA에 놓여있지 않은가. 잘 기능하고 보기에도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게 즐거운 그는 이제 하나의 제품 디자인을 넘어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덩치 큰 프로젝트들로 행보를 옮겨가고 있다.

내가 정규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게 좋다. 그래서 다른 디자이너들과 구별될 수 있는 거다. 선입견 없이, 도전하고 모험할 수 있다. 선입견이나 이전에 배운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톰 딕슨이 카펠리니만이 아니라 덴마크의 유서 깊은 가구 회사 아크텍, 영국의 하비타트 등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이유다. 첼시아트스쿨에 들어갔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6개월만에 그만둬야 했던 불행이 그를 금속 용접에 취미 붙이게 하고 정규 교육의 틀에서 멀어지게 했으니, 그의 인생의 행로를 바꾼 행운을 가져다 줬다고 하면 비약일까.

이제 그만 그를 아래층의 파티 장소로 놓아주어야 할 때, 생활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디자인에 일맥상통하는 모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치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미지의 분야에 도전하는 게 좋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이미 교육을 받아서 충분히 알고 있는 일을 맡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잘 모르는 분야의 도전 거리가 던져졌을 때 나름의 방법을 찾고 스스로 배워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뭔가 정식으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종 같은 것. 그건 배우지 않고 하려 들면 큰일 나는 분야니까. 마지막까지 농담을 놓지 않는 딕슨 씨,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당신 운 좋은 사내 아닙니까? 그가 거창한 이름의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재미있어서 열중했던 놀이가 그의 인생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그만한 행운이 달리 어디 있나 

<루엘> 2007년 9월호

'portpolio > ryuca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위에서  (2) 2010.08.10
Airport  (3) 2010.05.27
디자인의 유효기간은 끝났을까?  (1) 2010.05.27
안드레아 보첼리 내한공연  (1) 2010.05.27
건축가 문훈 인터뷰  (2) 2010.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