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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ryucat

안드레아 보첼리 내한공연

안드레아 보첼리

5월 초지만 쌀쌀한 밤 공기, 하지만 공연장 안은 한여름 같았다. 2시간 동안 안드레아 보첼리와 다른 협연자들이 내놓은 소리의 파장들이 고이고 고여, 그리고 객석에서 관객들이 마주 내놓는 기분 좋은 기운까지 뒤섞여 공간은 잔뜩 부풀어 오른 터였다. 프로그램에 적힌 모든 레퍼토리가 끝난 2부 마지막, 보첼리는 무대 옆 계단을 내려가려다 문득 몸을 돌리더니 다시 무대로 나왔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라는 영어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콘 테 파르티로>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2시간 동안 그와 협연자들이 만들어 놓은 소리의 파도를 타고 객석 위를 덮쳤다.


보첼리의 목소리는 여느 세계적인 테너 가수들의 목소리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그는 정식 테너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이제껏 테너이기보다는 팝페라 가수라고 부르는 편이 안전했다. 지난 5월 2일에 열린 내한공연. 1부 첫 곡인 <카르멘> 서곡이 시작되었을 때 느껴진 보첼리의 목소리는 ‘강력하다’보다는 정갈하다는 것이었다. 잠실실내체육관은 그 목소리만으로 채워지기에는 조금 컸다.

하지만 첫 인상은 노래가 하나씩 이어지며 흔들렸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보첼리와 협연자들이 선택한 레퍼토리는 베르디나 푸치니 등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부터 마치 우리나라의 뱃노래 같은 이탈리아 민요 <바다로 가자>까지, 흥겨운 <카르멘>부터 장중한 <그라나다>까지, 엄선한 이탈리아의 노래들이다. 침착하던 공연장 안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1부 마지막 즈음, 플루티스트 안드레아 그리미넬리가 내려가고 소프라노 사비나 츠빌라크가 올라와 보첼리와 함께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너무 늦었어요>를 부를 때부터였을 거다. 보첼리와 여러 번 무대에 섰던 슬로베니아 출신 소프라노 츠빌라크는 보첼리의 목소리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1992년에 데뷔한 보첼리의 애초 유명세에는 그가 앞을 보지 못하는 가수라는 호기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동정심까지 더해져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팬들의 바람이 더욱 강했으리라는 것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그를 소개하고,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듀엣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 보첼리의 머리카락과 수염에는 눈이 내렸다. 그동안 보첼리는 오페라 무대들에 서면서 자신의 레퍼토리를 넓혀 나갔다. 조수미, 플레밍을 비롯한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협연을 하고 주빈 메타, 정명훈 등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지휘자들에게 테너 가수로서 인정을 받았다. 2000년 오페라 <베르테르> 공연을 기점으로 그는 테너 가수로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제 흰 수염이 가득하고 주름의 굴곡이 깊어진 보첼리의 얼굴은 무성한 수염 자국이 검게 짙던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멋지다. 그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무대를 오르내릴 때마다 지휘자 유진 콘과 다른 협연자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보첼리에게 팔을 내밀어 그를 안내했다. 간혹 걸음걸이가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 앞에만 서면 그는 자유로웠다. 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이나 곡이 하나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칠 때마다, 보첼리는 어색하게 짧은 미소를 지었다. 거울을 볼 수 없는 그 사람은 자신이 노래를 할 때 어떤 표정인지, 그의 어색한 미소가 어떤 정감으로 다가오는지 모른다.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어둡고 무표정한 보첼리의 얼굴은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에 밝아지고, 초연한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그의 노래를 더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콴도 소노 솔로 소뇨 올리존테 에 망칸 레 팔로레” 크레센토로 서서히 올라가는 <콘 테 파르티로>의 첫 소절. 보첼리의 크레센토에 동조한 듯 객석에서는 탄식 같은 함성이 올라왔다. 공기의 밀도는 숨막힐 듯 빽빽했고, 이미 가득 차 있던 공연장은 정말 풀하우스가 되어버렸다. 관객들은 자동인형처럼 노래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로도 앵콜은 몇 곡 더 이어졌지만 사실 그 뒤로는 어떤 노래였어도 상관없다. 2시간 넘게 이어진 보첼리의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히 올라가는 크레센토였다. 사람의 목소리가 여느 악기보다 아름답다고 하던가. 보첼리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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