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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ryucat

두바이

아라비아 반도의 오아시스, 두바이

시내를 빠져나가면 이내 바람을 따라 흐르는 모래언덕들과 만나게 되는 두바이. 20세기 초반, 룹알할리 사막과 베두인족의 삶에 매료되었던 영국인 윌프레드 데시거는 그가 사랑한 아라비아의 사막에 유럽의 여느 대도시와 견줘 결코 뒤지지 않는 도시가 들어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두바이의 야경은 미래 도시에 온 듯한 인상을 주지만, 주어진 자연 환경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되려는 이 사막 도시의 꿈은 여전히 인간의 상상력을 한 발짝 앞서 달려가는 중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있는 모래 언덕들은 영락없이 파도를 닮았다. 내가 탄 4륜 구동차는 서핑보드처럼 모래 언덕을 넘고 있었다. 평평한 모래 위를 달리다 언덕을 만나면 그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듯 멈췄다가 속력을 내 재빠르게 경사면을 오르는 것이 요령이다. 까딱하다가는 바퀴가 미끄러져 모래에 묻히기 십상이다. 언덕을 하나 넘을 때마다 차에 함께 탄 호주 소녀 두 명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와 비슷한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45대쯤 되는 4륜 구동차의 행렬 가운데 있었다. 앞에 가던 차가 모래에 빠질 때마다 다른 차가 멈춰서 체인을 연결하고 빠진 차를 꺼내 주었다. 이것이 사막 사파리를 갈 때 꼭 여러 대의 차가 함께 가야만 하는 이유다.

운전을 하는 미단은 오만 사람이지만 두바이에서 40년 넘게 살았다고 했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 언덕들 뿐인데, 어떻게 길을 찾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모래 언덕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모습을 바꾸고 일 년이면 60센티미터씩 자리를 옮긴다는데, 망설임 없이 사막을 달리는 이 차는 한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단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 사막 구석구석을 알고 있어서 문제 없어. 도시의 잘 닦인 길과, 첨단 GPS 장치에 길들여져 자연의 감각을 잃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막의 길을 이들은 읽어낸다.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 사막 룹알할리가 페르시아 만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두바이. 지금의 사람들은 두바이를 이야기할 때 그곳이 별 7개 짜리 호텔이 있는 최첨단의 도시라는 것을 먼저 기억한다. 하지만 두바이 영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사막은 수많은 이방인들을 이 땅으로 끌어들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두바이에 와서 사는 많은 외국인들은 쉬는 날이면 4륜 구동차를 몰고 사막으로 나가고,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 캠핑을 한다.

모래와 바다가 전부였던 두바이에 도시가 들어선 것은 채 5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현재 두바이에서 가장 번화한 시가지는 셰이크자예드로드 주변에 형성되어 있다. 두바이 번영의 상징인 이 도로는 아랍에미레이트의 수도인 아부다비까지 뻗어 있으며 그 주변에는 사무실 빌딩과 고층 아파트는 물론 유명한 호텔이며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어 오늘날 두바이에서 가장 중요한 혈관 역할을 한다. 교통 체증이 있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 그 도로를 달리면 두바이에서 중요하다는 건물들을 대부분 볼 수 있다.


1979
년에 세워진 두바이 최초의 고층 빌딩 월드트레이드센터부터 시작해서, 현재 중동과 유럽을 통틀어 가장 높은 에미레이트타워 두 채가 손을 어슷하게 맞댄 모습으로 서 있다. 빌딩숲을 지나 조금 더 달리면, 고급 빌라와 리조트들이 들어선 쥬메이라 해변에 닿게 된다. 오늘날 두바이의 상징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인 부르즈알아랍도 이곳에 있다. 해변에서 250미터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이들 전통 배 도우의 모양을 본 따 지은 호텔. 이 호텔의 최고급 시설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인데,
금색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금이다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부르즈알아랍의 진정한 가치는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에 있었다. 바다를 향해 있는 창가에 서면 항해 중인 배 위에 있는 것처럼 시야가 온통 바다와 하늘로만 채워진다. 멀리 발 아래로 파도가 부딪혀와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행여 호텔 전체가 파도에 흔들리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르즈알아랍은 현재 지어지고 있는 새로운 건축물에 두바이의 랜드마크 자리를 내줘야 할 참이다. 700미터가 넘는 높이로 설계된 초고층 빌딩 버즈두바이가 이제 막 솟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타이페이금융센터101 빌딩이 508미터. 2008년 버즈두바이가 완공되면 그 타이틀을 가져올 것이다. 이 빌딩의 설계는 미국에서, 기술 감독은 영국 기업에서 맡았는데, 시공은 삼성건설이 하고 있다. 700개의 객실을 갖춘 아르마니호텔, 700세대 이상의 고급 아파트, 그리고 37개 층의 사무실이 들어설 초대형 첨탑 모양의 버즈두바이. 현장에서 만난 삼성건설 김봉주 부장은 우리의 기술자들이 어떻게 이 건물을 짓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버즈두바이는 세계 1번지가 되려는 두바이의 포부를 보여 주는 상징입니다. 사막밖에 없던 이 나라의 자존심이지요. 두바이에서는 모래를 시멘트로 바꾼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 맞는다.


두바이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많은 사람들은
, 종종 이곳의 역사를 석유 발견 이전과 이후로 이야기했다. 석유가 나기 이전 두바이 인구는 1만여 명이지만 지금은 200만 명 이상이며, 그 중 80퍼센트 가량이 이곳에 일거리를 찾아 온 외국인들이다. 하지만 두바이의 고속 성장이 단지 석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중동 산유국에 대한 뻔한 선입견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현재 두바이의 GDP에서 석유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0퍼센트 정도인데, 1985년에는 GDP의 절반 가까이가 석유로 벌어들인 수입이었다. 또한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은 많지 않아 앞으로 10여 년 뒤면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두바이를 부강한 나라로 키운 것은 세이크 라시드 빈 자예드 알 마크툼의 현명함이 이룬 큰 성과다
. 두바이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은 1966. 석유가 없어도 국민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당시 통치자였던 세이크 라시드가 구상한 두바이의 미래는 외국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중계 무역 기지였다.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데 투자되었고, 관세를 비롯해서 무역 활동에 대한 제약을 없앴다. 1985년 인간이 만든 가장 큰 항구인 제벨알리항과 함께 문을 연 제벨알리 자유무역지구는 두바이의 입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곳을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외국 기업들은 두바이를 중동의 중계 무역 기지로 자리잡게 했고, 이 도시로 사람과 돈을 끌어들였다. 그 이후 두바이는 빠르게 성장했는데, 특히 지난 10년 동안 두바이의 GDP는 연간 평균 10퍼센트라는 폭발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워낙 많은 물자가 오가는 덕분에 두바이는 쇼핑의 천국이기도 하다
. 단지 관세가 붙지 않아서 가격이 다른 나라에서보다 저렴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살 수 있는 품목이 세계 어느 곳보다 다양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사실 두바이에서 파는 물건 중에 두바이산은 거의 없다. 두바이유라고 이름 붙었다 해서 모두 두바이에서 생산되는 석유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었더라도 두바이 석유 거래소에서 팔리는 석유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구시가지에 있는 재래시장
수크에는 이란산 향신료와 인도의 특산품인 옷감 등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또한 두바이의 유명한 쇼핑센터들에는 세계적인 명품부터 주변 국가에서 온 특산품까지 갖춰져 있어서 세계 최고의 쇼핑 중심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석유로 떼돈을 번 중동의 산유국은 많다
.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돈을 국민들을 위해 얼마나 투자하는가에 달려 있다. 떠나기 전날, 쥬메이라 지역의 고급 빌라촌에 사는 40대 여성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녀는 네 명의 아이들을 두었는데, 24살인 큰 아들은 영국에서 공부를 마쳤다고 했다. 두바이 정부는 모든 자국민들에게 무료 의료 혜택과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여성이 평등한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공부를 잘하면 국비 장학생이 되어 유학을 가는 기회를 얻고, 국가 기관에서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18세가 넘은 남성은 집 지을 땅과 돈을 지원 받고, 에미레이트 국민끼리 결혼을 하면 결혼 비용도 정부에서 대준다. 여간 못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두바이에서 태어나 잘 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제 비슷한 자연 조건을 가진 주변의 중동 국가들은 두바이를 성장 모델로 삼고 있다.

그래서 두바이의 세이크들은 국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두바이에서 자동차 뒷유리에 어떤 아랍인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본다면 십중팔구 전 아랍에미레이트 대통령인 아부다비의 세이크 자예드 빈 술탄 알 나얀이거나, 두바이의 왕세자인 세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이다. 원래 부족 사회에서 존경 받는 노인, 지도자를 뜻하는 세이크는 왕족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이다. 두바이에서는 어디를 가도 세이크들의 이름을 듣게 되는데, 길고 복잡한 이들의 이름은 어느 집안 누구의 아들 아무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왕세자의 이름은 마크툼 집안 라시드의 아들 모하메드라고 이해하면 된다.

왕세자 세이크 모하메드는 현재 두바이 최고 통치자인 세이크 마크툼의 셋째 동생이다. 아직 왕위를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가장 활발하게 정치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두바이의 수많은 건설 프로젝트들은 그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대추야자나무 모양의 인공섬 프로젝트는 존재하지 않았던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려는 계획이나 다름없다. 대추야자나무를 많이 심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어왔을 정도로 사막의 유목민들에게 이 나무는 중요한 식물. 두바이의 해안선을 따라서 총 3개의 대추야자나무 인공섬이 만들어질 계획인데, 각각의 인공섬은 두바이의 해안선을 60킬로미터나 늘리게 된다. 섬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돌과 모래로 2미터 높이, 50센티미터 두께의 벽을 쌓으면 지구를 무려 세 바퀴나 두를 수 있다. 기초 공사가 끝나가는 팜 쥬메이라는 부르즈알아랍 왼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호텔에서 수많은 가지가 달린 대추야자나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이제 곧 고급 빌라들과 호텔, 요트 선착장 등이 들어설 그 인공섬은 마치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곤도르처럼 수많은 날개를 펼친 채 바다를 향하고 있다. 여기에 300여 개의 인공섬을 건설해 세계 지도 모양을 만드는 더 월드 프로젝트까지 더하면 두바이가 구상하고 있는 이들의 미래는 세계 최고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다.


<모닝캄>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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