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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짐에 목마르다 - 박용하 인터뷰


박용하는 <온에어>로 다시 터를 닦고 <작전>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는 ‘한류 스타’란 타이틀 틈에서 신기루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존재감이 더욱 단단해지고 구체화됐다. 기존의 이미지를 흐트러뜨리고 맹렬하게 ‘주식 작전’에 뛰어든 박용하에겐,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어 보인다.


■ 과거에 그는 스타가 되려고 했다

<작전>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흐트러진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서’라고 들었다. 그런 캐릭터에 목말라 있었던 건가.
‘목말라 있었다, 틀을 깨고 싶었다’ 등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맞을 거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내게도 어떤 ‘색깔’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 전에는 자신의 색깔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냥 돈 많이 벌고 스타가 되려는 사람. 철없을 때부터 활동해서 그런 것 같다.

처음 활동할 때부터 스타가 되길 꿈꿨나.
나는 17살 때 데뷔했는데, 그때는 그냥 놀면서 했다. 대학에 가서는 겉멋에 좀 빠지기도 했고.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박용하’란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약간 길이 틀어져버린 감도 있다. 잠깐 일이 잘 풀리던 때도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해야 할까. 그 보상을 자꾸만 ‘스타’ ‘명예’ 같은 걸로 받으려고 한 것 같다. 그땐 아주 1차원적인 아이였다.(웃음)

한동안 일본에서 주로 활동해서 그런가. 사실 박용하 하면 해외 배우 같다는 느낌이 짙었다. 그러다가 <온에어>(TV, 08)를 통해서 드디어 ‘한국 배우구나’란 게 실감났다. 본인에게도 2008년은 어떤 전환의 기회가 됐을 것 같다.
물론 중요한 해였다. 얘기하자면 참 길다.(웃음) 일본에 가기 전에도 나는 존재감이 확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오랫동안 봐온 사람, 몇 편의 드라마에서 비슷한 캐릭터로 나왔던 사람, 그 틀을 못 깨는 사람이었지. 그렇게 편해 보이는 사람처럼 살다가 뭔가 연결고리가 생겨서 일본으로 ‘증발’했다.

증발?
나는 사람들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증발했다’고 말한다.(웃음) 방금 ‘해외 배우’라고 좋게 표현해줬지만,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가 일본에 갔는지 잘 몰랐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궁금해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부끄럽지 말자’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한류의 힘을 받아 자리를 잡았고, 한류가 주춤해도 결국 활동하는 사람은 하는 단계에 왔을 때쯤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전 소속사에서는 “솔직히 한국에선 너한테 작품도 잘 안 들어온다. 일본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고 들어가자”는 입장이었다. 그런 와중에 전 소속사와 결별하고 2007년 6월에 한국에 왔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하게 된 작품이 <온에어>다. 어떻게 보면 2008년이 내 인생에서 제일 큰 터닝 포인트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미지가 좀 바뀐 것 같다. 전에는 소년 같은 면이 강했는데, 이제는 남자의 느낌이 묻어난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조금씩 나오니까. 예전에는 그런 걸 잘 표현하지 못했거든. 사실 지금도 대본 연습할 때 대사를 잘 못 읽긴 하지만.

아니, 왜?
사람들이 많으면 잘 못하겠다. 창피해서.(웃음) 원래 사람들이 많은 데서 뭘 표현하는 걸 진짜 못한다. 뭘 해도 어색한 것 같고. 그래서 촬영하고 나면 몸이 아프기도 했다. 다행히 이제는 ‘넉살’이란 놈이 내게도 찾아와서,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오래 활동했는데 이제야 넉살이 생겼다고?
나는 진짜 끼가 없다. 요만큼도!(웃음)

너무 단언하는 거 아닌가.
오래 해봤으니까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잖나. 신기하게도 일본에서 콘서트를 할 때는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연기할 때, 특히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사시나무 떨 듯 떤다.(웃음) 어떤 배우는 첫 테이크의 연기가 제일 좋다고 하는데, 나는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편이다.

■ 현재 그는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작전>의 강현수 역할은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나.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 강현수의 등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하 방에서 추레하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담배를 피며 주식을 하고 있거든. ‘아, 이게 바로 내가 며칠씩 집에 처박혀 있는 모습이구나. 나의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공개되면 완전 웃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불씨가 되어 출연한 건데, 여러 배우들이 다함께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한 강현수와 감독님이 생각한 강현수가 거의 일치했다.

함께 출연한 박희순에게 “저 좀 예뻐해 주세요”라고 했다던데. 전략상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한 건가.
이 영화에선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종구(박희순)란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긴장감이 있으면서 산만하지도 않고. 색깔이 확실한 캐릭터들이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선, 뭔가 상반되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희순 형에게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서라기보다, 작품 자체가 워낙 그런 걸 필요로 했으니까.

촬영 초반, 박희순이 무서웠다는 말도 했는데.
일단 좀 못되게 생겼잖나.(웃음)

에이, 눈은 사슴인데?(웃음)
사슴 아니야. 차갑고 못되게 생겼어! 처음 대본 연습을 하러 갔는데, 희순 형이 들어오자마자 다리를 턱 꼬고 앉아 담배를 피기 시작하더라.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솔직히 당시에는 ‘앞으로 정말 힘들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대본 연습을 네 차례 정도 하면서도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첫 느낌은 그랬는데, 알고 보니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더라. 아주 순수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박희순이 가진 재능에서 가져오고 싶은 건 없었나.
희순 형의 세고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이랄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게 있잖나. 근데 그건 나이, 연륜에서 오는 거라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은 내공을 좀 뺏어오고 싶긴 한데, 형은 지금 마흔이잖아!(웃음) 난 아직 30대 초반이거든. 나이가 들면 내게도 그런 게 생기겠지만,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난 남자 배우들은 꽃미남 같은 모습보다는 흐트러진 모습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강현수처럼 인생 한방을 노린 적이 있나.
어릴 적 스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 스타가 되는 건 한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스타는 한방에 되는 게 아니더라. 진정한 스타는 등장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쭉 스타다. 눈 감고 ‘스타가 누구지?’ 하면 떠오르는 몇몇이 있잖나.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 몇몇이 스타라고 생각한다. 데뷔하고 나서 뭔가 가능성이 보이면 바로 스타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거야말로 한방을 노리는 거지. 예전에 내가 그랬다.

많은 배우들이 “난 스타가 아니다. 난 배우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대중은 배우와 스타 모두를 원한다. 당신처럼 팬 문화를 많이 겪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거다. 이를테면 어떤 팬들은 당신이 연기하는 것 외에도 어떤 ‘팬 서비스’를 해주길 원할 거다. 일종의 ‘아이콘’이 돼주길 원한다고 해야 하나.
그건 아주 심플한 문제다. 연기 외에도 일부 대중이 원하는 걸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인 것 같은데, 물론 여지는 있지.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좀 놀란 게 있다. 영화를 찍으니까 내게도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더라.(웃음) 그런데 나는 ‘배우’ ‘탤런트’ ‘한류’ 등의 단어로 한 사람을 규정짓는 게 참 싫다. 내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고. 그저 타이틀에 신경 쓰지 않고 ‘박용하’란 이름으로 통했으면 좋겠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조차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넉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내 생각을 표현하면서 원하는 걸 어필할 줄 알게 됐으니.

1998년에 <스크린>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감성적으로 굉장히 예민하다는 묘사가 있다. 시나 소설을 좋아하고, 한번 슬픔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사람이었다던데.
어릴 때는 내가 그랬나 보지.(웃음) 지금은 감정의 ‘놀아남’을 어느 정도 제어할 줄 알게 된 거고.

그러면서 또 자신을 차가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자기 자신에게 냉정하다는 말인가.
냉정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고. 일이든 인간관계든 끝내 포기해야 할 때가 되면, 정말 미련 없이 돌아서는 편이다. 그래도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차갑게 지내는 짓은 못한다. 그러다가도 금방 풀리지.(웃음)

주변에서 말하는 박용하는 어떤 사람인가.
솔직히 ‘좋은 사람’이란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건 그냥 해주는 말 같다. ‘어떤 부분에서’ 좋다는 말이겠지. 앞의 나쁜 말들은 다 생략하고.(웃음)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내게도 나쁜 면들이 많다는 걸 안다. 사실 방송하는 놈들이 아는 척은 많이 해도, 이렇게 누가 말해주면 잘 속기도 한다.(웃음)

■ 미래에 그는 멋지게 늙어있을 것이다

인터뷰 전에 인터넷에서 잠시 검색해봤더니 ‘박용하, 일본에 있을 때 우울증에 시달려’ 이런 헤드라인 기사가 뜨던데, 정확한 사실인가.
<네버엔딩 스토리>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여담으로 한 말인데, 그렇게 기사가 뜰 줄 몰랐다. 일본생활 자체가 우울하진 않았다. 일본에 있는 동안 다른 일들 때문에 힘든 시간이 몰려온 것이지, 일본에서 그렇게 잘됐는데 왜 우울증에 걸리겠나. 그런데 이렇게 기사가 나가면 일본 팬들은 ‘아, 우리가 박용하를 힘들게 했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 때문에 신경이 좀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없나.
후회는 나 자신에 대한 후회지, 일이든 사랑이든 내가 만난 것들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나 자신의 경우도 ‘어려서 그랬을 거야’라고 생각되면 그냥 넘어간다. 다만 ‘그 나이임에도 그렇게 했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후회될 뿐이다.

언젠가 “나는 한 번도 연기를 잘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나.
항상 연기는 했다. 근데 뭐라고 해야 하나? 내게는 연기에 대한 느낌이 없다. 아, 없어~ 없어!(웃음)

그래도 어떤 연기가 잘하는 것이다, 하는 기준은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어떤 역할을 해도 평준화시킬 수는 있다. 봤을 때 어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그런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에는 울면 다 되는 줄 알았거든. 나는 가짜로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진짜 멘탈 바닥까지 다 내려가서 끄집어내야 울 수 있었다.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울면 사람들도 같이 울 줄 알았다. 그런데 운다고 슬픔을 전달하는 게 아니더라. 그런 것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다.

그건 복합적인 이유가 아닐까. 관객들은 배우의 연기에만 감동을 받는 게 아니라, 작품이 함께 따라줘야 하는 것이니까.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지간에, 배우가 갖고 있는 고유한 것들이 다 보일 수밖에 없다. 그건 나도 인정하지만, 거기서 얼마만큼 더 나아가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하느냐는 배우의 몫이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참 많이 모자란 것 같다. 고로 ‘나는 연기를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배우들을 만나면 항상 “어떤 영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게 된다.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당신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유독 마음을 많이 주는 작품은 어떤 쪽인가.
내년, 아니 올해 말에도 바뀔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약간 작가주의 영화 혹은 내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아직은 내가 어떤 걸 잘하는지 모르겠으니까. 그동안 나는 멜로만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다른 쪽에도 욕심이 생겼다. 지금까지 멜로의 감성을 자극하는 걸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방향을 틀어 다른 패턴의 연기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지금 가장 큰 고민 혹은 관심사는 뭔가.
일단 <작전>이 잘 되는 것! 이 작품으로 2009년을 시작하는 거니까.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홍보활동 중에)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아, 진짜 죽을 것 같다. 희순 형이 만날 나보고 “박 군만 믿어”라고 하는데, 나는 또 “아니, 형 왜 그래요? 형은 배우 하지 말고 버라이어티 쪽으로 가라니까” 이렇게 맞받아치곤 한다. 한번은 희순 형이 그러더라. “야, 난 요즘 집에서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있으면 (긴장해서) 배가 아프다.” 사실 나도 그렇다. 이거, 둘이 나가서 완전히 얼어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다음 작품은 뭔가. 박용하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까.
송지나 작가님의 드라마 <남자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계약서에 도장만 안 찍었다 뿐이지, 거의 결정된 상황이다. 작가님이 처음에 주인공 역할을 제의하셨을 때는 너무 걱정이 돼서 미뤄두고 있었다. 원 톱이라 너무 무겁기도 하고 연기하기가 어려운 역할이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동안 아무에게도 그 역할을 안 주셨더라. 작가님이 그 작품으로 나의 다른 면을 보길 기대하시길래, “까짓 거 뭐 있습니까?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재밌는 건 <마린보이> 팀 배우들(김강우 박시연)과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작전>과 <마린보이>는 한 주 차이로 극장에서 맞붙는다). 그래도 뭐, 영화는 우리가 더 잘 될 거니까. 하하.

<SCREEN> 2009년 12월호

PS. <작전>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했던 기사입니다. 그가 멋지게 늙어가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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