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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ure 3월] 2011, 오스카가 주목하는 두 배우

2011, 오스카가 주목하는 두 배우 (링크)


나탈리 포트먼, No more a good girl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문은 여우주연상이다. <래빗 홀>의 니콜 키드먼이 팽팽한 피부를 포기하고 이마 주름을 보여줬다해도, <윈터스 본>의 신인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소름끼칠만큼 연기를 잘 했다 해도, 그리고 <블루 발렌타인>의 미셀 윌리엄스가 권태기 부부의 아픔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해도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은 나탈리 포트먼이다. <키즈 아 올라잇>에서 흥겨운 레즈비언 부모를 연기한 아네트 베닝에게 베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정할 건 인정하자. 예로부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삶의 밑바닥을 치는 캐릭터 연기자들에게 돌아갔다. 혹독하게 망가진 배우만이 오스카 트로피를 안을 수 있는 것이다. 수상을 확신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테크닉적으로 발레 연기를 소화해냈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육체를 모두 소진시켜야 하는 심리전을 펼쳐야 했다. ‘연기 속의 연기’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영화를 홀로 이끌고 가는 원톱 원기를 선보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더군다나 그녀가 이 정도까지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를 만난 건 처음이다.

SF 영화와 휴먼 드라마에서 갈팡질팡했던 그녀의 이력이 <블랙 스완>으로 제 궤도를 찾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블랙 스완>의 니나와 나탈리 포트만의 인생이 비슷하게 겹쳐진다는 것이다. 엄마와 선생을 만족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니나는 드디어 프리마돈나의 자리에 오른다. 그녀에게 발레는 주어진 숙명같은 것이었다. 늘 모범생의 자세로 발레를 해왔던 그에게 선생은 그 이상의 연기를 요구한다. 발레의 세상 밖에서 방황하면서 니나는 스스로를 위해 춤을 추는 법을 배워 간다. 나탈리 포트만도 13세에 <레옹>으로 데뷔한 이후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모범생은 연기에 있어 늘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재능있는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포트먼은 스스로의 벽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연기를 그만둘까 생각하며 대학원을 마치고 인도, 모로코, 쿠바 등을 홀로 여행했다. 요르단의 라니아 여왕과 협력해 개발도상국의 여성 창업을 돕는 기구도 만들면서 정치적인 활동도 벌였다.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 중에 출연한 영화가 <브이 포 벤데타>였다. 이 영화를 위해 삭발을 감행하면서 포트먼은 영화 캐릭터에 빠지는 법을 배웠다. 자신을 위해 연기하는 재미를 발견한 것도 이 때였다. 영화판의 모범생이 되기를 거부한 후, 웨스 앤더슨의 단편 <호텔 슈발리에>에서는 깜짝 누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잠깐의 심심한 행보 끝에 선택한 <블랙 스완>은 포트먼의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2005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클로저>에서도 그녀는 양면의 여성을 연기했지만 <블랙 스완>에 비하면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다. 니나는 포트먼의 특징인 ‘답답한’ 연기를 극한까지 몰고 가서 터뜨려 버리는 캐릭터였다.

백조신에게 신내림이라도 받은 걸까? 이후 필모그라피에 다채로움이 넘쳐난다. 자유로운 섹스라이프를 추구하는 <친구와 연인 사이> 엠마는 물론이고, 안드로메다 SF역사극(?)이 될 것 같은 <쏘르>, 괴작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코미디 <유어 하이니스 Your Highness>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차린 ‘핸섬찰리 필름즈’의 첫 작품인, 조셉 고든 레빗에게 떠돌이 히피 역으로 등장하는 <헤셔 Hesher>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여우주연상을 휩쓰는 영광과 약혼에 임신 소식까지, 나탈리 포트먼은 인생의 또 다른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여전히 착한 소녀(good girl)인가요?” 포트먼은 대답했다. “아니요. 나는 다른 이들처럼 복잡한(complicated) 사람일 뿐이에요.”


콜린 퍼스, Speechless Gentlman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이미 정해진 듯 하다.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가 그 주인공이다. 골든 글로브, 영화배우조합상, 영국독립영화상, LA 비평가상 등 연말연초 수많은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작년 <싱글맨>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진입으로 콜린 퍼스에 대한 신뢰도가 천정부지로 상승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 젠틀한 영국 신사는 누구보다 겸손한 수상소감을 남기고 있다. 올해 골든 글로브만 해도 “신비로울 정도의 재능을 가진 동료 배우들과 엄청나게 아름다고 책임감 있는 여왕님(헬레나 본햄 카터)에게 감사드린다”며 다른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싱글맨>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소감은 전설이 됐을 정도다. “톰 포드 감독이 몰랐던 게 있는데, 역할을 고사하려고 썼던 메일이 내 메일함에 있습니다. 그 메일을 막 보내려고 할 때 냉장고 수리기사가 방문했어요. 나는 나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냉장고 수리기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알게된 건 냉장고가 수리될 때가지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지 말란 겁니다.” 콜린 퍼스는 예의와 유머가 섞인 문장을 사용하며 자신의 품격을 보여줬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회원들은 어쩌면 콜린 퍼스의 격조 있는 수상소감을 기대하며 그에게 투표를 할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킹스 스피치>에서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연설을 할 수 없었던 영국의 왕 조지 6세를 연기했다. 여느 배우보다도(또 여느 감독이나 프로듀서보다도) 수려하게 말을 잘 하는 그가 말을 못 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다. 콜린 퍼스는 작품에 들어가기 앞서 역사자료와 다큐멘터리를 섭렵했다. 그리고 말더듬는 사람들의 특징을 꼼꼼하게 연기했다. 목과 입의 움직임을 살피고, 알파벳 하나하나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익혔다. 리허설을 할 때는 혀를 묶어 보기도 했다. 말 더듬는 테크닉만 완수한 게 아니다. 말 더듬는 사람들이 말을 꺼낼 때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킹스 스피치>에서 콜린 퍼스가 말을 더듬는 순간순간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더 놀라운 건 말을 미처 꺼내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당시 조지 6세는 형 에드워드 8세의 갑작스런 하야로 준비도 없이 왕이 되야만 했다. 더군다나 세계정세는 히틀러의 등장으로 전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콜린 퍼스는 조지 6세의 말 못할 아픔을 말 못하는 채로 전달해냈다. 여기에는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가 있다. 실제 인물, 장애 극복, 반나치 정서. <싱글맨>같은 마음의 파동보다는 <킹스 스피치>처럼 눈으로 확인가능한 장애가 투표인단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른 후보들은 어떠냐고? <소셜 네트워크>의 제스 아이젠버그와 <127 시간> 제임스 프랭코는, 실제 인물을 ‘잘’ 연기했지만 아직 받을 나이가 아니다. <뷰티풀>의 하비에르 바르뎀 역시 훌륭했지만 영화가 외국어영화상 후보인 게 한계다. <더 브레이브>의 제프 브리지스는 당연히 받을 만하지만 이미 작년에 받았다.

<싱글맨> 이전까지 콜린 퍼스는 주로 점잖고 순박한 캐릭터들을 지나왔다. <오만과 편견>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달시가 그의 대표 역할이었다. 단 한 번 <맘마미아!> 때 코스튬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수준에서) 미친 연기를 보여줬으나 그다지 코믹하진 않았다. <싱글맨> <킹스 스피치>를 통해 콜린 퍼스는 더 이상 병풍같은 영국 신사를 연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은 이런 터닝 포인트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코엔 형제와 함께 하는 차기작 <갬빗 Gambit>에서는 무려 미술 사기꾼을 연기한다. 브리짓 존스도 우리도 이제 달시를 잊을 때가 됐다.


홍수경_뉴욕 칼럼니스트
<프리미어> <무비위크>를 거쳐 현재 뉴욕에서 <무비위크> <브뤼트> <얼루어> 등에 기고 중.
janis.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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