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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polio/borasay

오랜 아쉬움이 길처럼 이어지리라

피맛골에서의 마지막 보행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길. 해가 들지 않아 어둑한 피맛골을 밝히는 건 어시장 같은 활기다. 오랜 골목은 축적된 역사를 배후로 대도시 서울의 소박한 이면을 보여준다.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같은 정체성을 갖는다. 낡고 허름하지만 쉬이 무너지지 않고 누대로 이어져온 끈덕진 피맛골. 그 길이 지금 무력하게 스러져 가고 있다. 형형색색의 이전 안내문, 밖에서 건 자물쇠, 거꾸로 선 의자가 공사장 먼지 속에 방치돼 있다. 활기는 오간 데 없이 짙은 패색으로 한치 앞도 흐리다. 이 세기의 승부는 인간의 편리가 시간의 축적을 이기도록 정해져 있는가.
글, 사진 장세이
(환경재단 매거진 <그린 리포트> 2009년 05+06월호)


나름의 격조와 풍류가 흐르던 길
피맛골은 광화문 교보문고 후문 맞은편에서 시작해 단성사 정문 맞은편까지 이어진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종로 3가에 이르는 6차선 대로와 나란히 흐르는 형상이다. 피맛골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는 건물이 도열해 있다. 추위를 이기려 밀착한 황금펭귄 떼처럼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로변 건물은 대개 대로 쪽으로만 문을 내고 있어 피맛골의 오른쪽 담장 역할에 충실하다. 골목 왼편 건물에 피맛골의 주요 상점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민초들이 양반네들을 피해 걷던 길이 피맛골이다. 너른 종로통에는 가마 타고 다니던 높은 양반네들이 많았고, 수시로 허리를 숙이고 절하는 것이 번거로웠던 낮은 이들은 대로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만, 조금이라도 편히 걸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리해서 말을 피한 길, 혹은 말 한 마리 피할 만큼 좁은 길이라 해서 피맛골이라 불리는 길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길가에 목로술집, 모주집, 장국밥집이 있었고, 그 나름대로 격조가 흘렀다'는 내용이 안내 표지판에 써 있다. 같지도 않은 양반네를 피해 좁은 뒷길로 숨어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같은 신세의 사람들과 어우렁더우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길. 한 잔으로 시작한 모주가 한 동이가 돼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육자배기 한 자락 불러젖히는 사람, 위아래 타령하다 '너 잘났네, 나 잘났네' 시비가 붙어 술값 하느라 꼴갑 떠는 광경, 그래도 다들 돌아갈 집은 있어 터덜터덜 짚신짝 꿰어 신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애처로웠을 골목. 지금도 연인 둘이 나란히 걷다간 욕 듣기 딱 좋게 길은 좁다.
피맛골 초입에는 빈대떡 지지는 고소한 냄새, 고등어, 삼치, 꽁치 굽는 비린 냄새가 유령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다. 둘 데가 없어 골목에 쌓아올린 '서울 장수 막걸리'와 짝을 이룬 냄새다. 훈제된 창 너머로는 그 옛날 민초들의 것과 다르지 않은 퇴근길 직장인들의 신세타령이 오늘도 길다. 실컷 축인 목으로 옛 노래 한 자락 부르고 내일을 걱정해 더 늦기 전에 제 집 찾아 떠나는 뒷모습 또한 옛 것과 겹쳐지는 데가 있다. 그것이 피맛골의 격 없는 격조이고, 변치 않는 풍류다.


겨우 남은 소소한 풍경
실상 피맛골은 사라지는 중이다. 건물들은 날도 더운데 공사 가림막을 둘러쓰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은 가뜩이나 어둑한 길을 더 어둡게 만든다. 교보문고 후문부터 종각사거리까지의 피맛골은 근래까지만 해도 버젓했다. 그 길의 중간 지점에 들어선, 피맛골과 애초에 무관한 이름을 한 르메이에르빌딩은 피맛골의 가는 숨통을 끊어놓았다. 메밀국수로 전통을 이어온 미진과 해장국의 원조라는 청진옥, 매운 낙지볶음이 별미였던 이강순 실비 등은 발빠르게 새 빌딩으로 옮겨갔다. 빈대떡과 굴전으로 이름난 열차집, 생선구이를 주로 파는 대림과 꼬치구이 집 정도만이 여전히 제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르메이에르빌딩 정문 앞에는 이마에 피맛골이라고 써 붙인 나무 조형물이 있지만 누가 봐도 명색일 뿐이다. 빌딩이 끝나고 다시 길이 시작되어도 영업 중인 가게는 몇 없다. 유흥주점, 모텔, 안마 간판이 철없이 붉다. 한정식집 부림과 쌍쌍호프, 새로 생긴 이자카야 춘산 정도가 남아 있다. 수몰 직전의 마을이 이런 풍경일까.

종각사거리에서 단성사까지 이르는 피맛골은 입구를 찾기 힘들다. 종로타워 오른편 길로 들어섰다가 애먼 데서 오래 지체했다. 다행히 옛 골목의 정취가 남아 있는 길을 발견했다. 하지만 골목 양쪽의 한옥들은 밖에서 걸어 잠근 지 오래돼 길가 유리창과 대문 백열등은 박살나 있다. 골목을 다니는 이는 멋모르고 들어선 이방인들뿐. 곧 허물어질 길에선 하늘 향한 처마 끝도 처량하다. 물길처럼 굽이치는 길은 살다 보니 생겨났을 테다. 비고 허술한 데가 많아 숨바꼭질하기 좋았을 길.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 연인을 돌려보내던 담벼락이 아쉬웠을 아늑한 공간. 돌아가는 길목마다의 숱한 사연은 배인 데를 잃고 포크레인이 일으키는 먼지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겨우 찾은 '서피맛골' 입구. 쓸쓸한 발길은 단성사까지 내내 이어진다. 안내지도에 촘촘히 적힌 상호들이 무색하게 길은 한산하다. 길은 탑골공원 맞은편, 인사동 길의 시작지점에 있는 금강제화 건물 옆으로 터져 나온다. 오랜만에 골목을 찾은 중년남자 둘이 '피맛골 주점촌' 간판 아래 섰는데, 얼른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어어, 다 어데 갔노? 여 억수로 머 많았는데." 보도블록까지 들어낸 길에는 부직포가 길게 깔렸다. 사내 둘은 서 있기를 그만두고 결국 길로 들어선다. 가마니 같은 너른 등짝에 실망한 기운이 완연하다.

탑골공원, 종로지구대, 육의전빌딩 신축 공사현장을 지나 왼편으로 꺾어 들면 '동피맛골' 이정표가 보인다. 무력한 길이 지겨워 동피맛골로 들어서기를 미루고 탑골공원과 파출소 사잇길로 갔다. 허름한 국밥집과 탑골이발관이라도 봐야 성이 찰 듯 싶어서. 이발 3,500원, 염색 5,000원이라고 쓴 입간판 뒤로 환한 이발관이 보인다. 피맛골에서 가장 성업 중인 가게다. 좁은 가게 안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노인들로 북적인다. 이발관 앞, 마구 펼쳐놓은 좌판 위 물건들이 이루는 구성과 조화는 칸딘스키 앞이라도 꿀릴 게 없다. 우연하고 소소한 풍경은 골목은 걷는 맛 중 하나인데, 피맛골을 걸은 지 꼭 1시간 여 만에 만났다. 뱃속이 든든한데도 허기졌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동피맛골 초입에는 이름부터 정겨운 식당이 하나 있다. 바보보쌈. 할아버지 네 분이 낮술을 드시는 모습이 통유리창 너머로 다 보인다. 망부석 같은 단골집, 함께 늙어가는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 이제 영상전화방과 기원들이 마저 남은 피맛골을 채운다. 그리고는 단성사가 길 끝에 떡하니 서 있다. 이름만 그대로지 외관은 예전 것과 판이하다. 강남 어디 갖다 놓아도 잘 어울려 놀 현대식 건물이다. 돌아가는 길은 피맛골 대신, 차라리 대로변을 택했다.


오늘만 사는 위태로움
종각사거리 SC제일은행 본점 좌측의 한 공사장 출입구와 마주본 자리에는 피맛골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사절지 크기의 표지판은 성인 키만한 '공사 중' 푯말에 기가 눌린 듯 무력해 보인다. 피맛골의 유래와 위치를 소상히 아뢰고 있으나 행인들은 표지판의 존재를 개의하지 않는다. 워낙 행인이 드물기도 하다. 아무리 볕 좋은 한낮인들 무너지는 골목을 누가 걷고 싶을까. 출사 나온 디카족들과 아직 장사를 접지 않은 몇몇 가게의 주객들이 드문드문 좁은 골목을 오간다. 안내 표지판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한 건물 외벽에는 '그동안 본 건물을 이용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이 지역은 청진16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구역으로 불량,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현재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건물 임대가 불가하오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건물주 백'이라는 알림판이 붙어 있다. 
이 도시는 발전에 위배되는 것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어낸다. 건물이든, 길이든, 어쩌면 그 대상이 사람일지라도. 그 발전이 어떤 기준을 따른 것인지는 명확해 보이지만 옳아 보이지는 않는다. 피맛골의 퇴락은 이 도시의 즉물적이고 현시적인 사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불량하거나 낙후된 것으로 치환되고, 다듬고 유지해야 할 것이 아니라 부수어 없애야 할 것으로 둔갑한다. 오래된 길을 없애는 결단은 '오늘만 살 것'이라는 야무진 결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 역사는 다시 오늘부터! 옛 길이 사라지면 새 길을 내면 되니까."
모든 생김은 인위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흔한 말로 역사적 상황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필연적으로 완성된다. 유래를 가진 길은 변질되지 않았고 그 나름의 격조와 풍류 속에 명맥을 유지해왔다. 난데없이 하룻밤 사이에 불 타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땅의 위정자들은 철거와 신축에 왜 이리 과감해졌나. 과연 그들이 새로운 광(光)으로 수백 년 윤(潤)을 흉내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자들이었나. 종로통은 걷는 높은 마음으로는 피맛골을 걷는 낮은 마음을 정녕 이해할 수 없고, 자신들의 땅이 아니라면 이만큼의 할당도 아까운 것일까. 이처럼 수많은 비난과 비관 속에서도 어쩌면 피맛골은 이전보다 더 나아진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한 올은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우려했던 이들을 달래듯 '짠'하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골목계의 청계천이 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다만 이미 공사가 끝낸 대목만 보자면, 기대가 없어야 실망도 없다는 건 분명 진리다. 
길을 벗어나 먼 데서 피맛골을 다시 보았다. 오래지 않았지만 그 길에는 추억이 있다. 이따금 찾던 가게와 주인장과 먹을거리의 불변에 안도하고, 마음 내킬 때 목적 없이 그냥 걸었다. 별스럽지 않은 추억일지라도 세월 따라 발효될 것이라 믿었다. 수만의 사람이 걸어 곤고해진 길처럼 그 길 위의 시간도 응축으로 이어질 줄 알았건만.